수원시의 인문학 모험

박연규

발행일 2014-07-02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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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인문중심도시 정책 펴려면
제반사항들 인문적으로 바꿔
시민변화 유도해야 하고
책임·배려·정의 같은
목표의식 분명한 강좌 통해
생활속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이런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시의 과장들이 총 출연하고 국장, 부시장까지 중요 직책 공무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도시의 인문정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수원시 인문중심도시 용역과제의 착수보고회를 하면서 느낀 점이다. 비록 최근들어 인문학을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논의가 무성했지만 이건 정말 낯선 풍경이다. 적어도 이런 장면은 '시정은 먹고 사는 현안으로만 가득 차 있으리라' 생각해 온 인문학자의 눈에는 경이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수원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한마디로 놀랍다. 대학이 챙겨야 할 일들을 오히려 지자체가 총체적인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양상이다. 지난 3년동안 수원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라는 표어아래 인문학도시 조례 제정을 마련했고, 다양한 인문학 콘텐츠 개발과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전국 최초로 인문학 팀을 조직하고 인문학 강좌 홈페이지를 만들어 시에서 개최되는 인문학 강좌의 접수와 신청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시의 인문적 자산이 남김없이 동원되고 수많은 시민강좌들이 도서관, 박물관, 여러 교육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수원시는 향후 5년간의 인문중심도시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 필자가 이러한 구상에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한 도시의 인문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인문학은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어떤 도시가 살기 좋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그 도시에 오래 살아봐야 하는 것과 같다. 거리의 깨끗함, 사람들의 친절, 교통질서, 안전, 복지 등은 그 도시를 경험해야만 알 수 있다. 빈부격차, 소외계층 문제, 시민들 간의 갈등 요인들은 도시가 부유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결국은 도시 안의 사람들, 즉 시민들이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나눔, 배려, 책임, 정의와 같은 인문적 덕목들은 공동체적 시민사회를 담보하는 요건이 된다.

수원시가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앞으로의 인문중심도시 정책에 바라는 것이 있다.

첫째, 도시의 제반 정책들이 인문학과 같이 가야 한다. 도시정책을 인문적으로 바꿈으로써 시민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도시가 변화되어야 개인이 변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정책이 잘못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양보하고 배려할 수가 없다. 교통정책이 입안되는 시점부터 시민의식의 미덕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인문정신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수원시도 일부 그런 문제가 있지만 대부분의 인문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들의 잘못은 인문축제나 활동을 많이 하면 도시가 인문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장식이 아니다. 인문축제를 한다면서 한편에서는 여전히 질서의식이 부족하고 친절 개념이 없다면 껍데기 인문도시일 뿐이다.

셋째, 인문학 대중화의 목표 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인문강좌를 쏟아붓는다고 해서 좋은 인문도시가 되지 않는다. 대학의 강의를 도시로 끌어내는 것이 시민인문강좌는 아니다. 오히려 책임이나 배려, 정의와 같은 목표지향적인 강좌를 개발해서 시민들의 생활에 선명한 변화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잡아야 한다.

넷째, 시민이 인문정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을 인문학을 소비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접근방식에는 낡은 계몽주의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시대에 맞는 인문도시의 최종 목표는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정신을 갖추고 그것을 생활세계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정신의 생산 주체로서 '시민 인문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원시가 온 힘을 기울여 인문정책을 펴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문학에 관심이 없을 듯 보이는 공무원들이 인문학의 비전을 논의하는 것도 멋있다. 다만 수원시가 진정으로 선도적인 인문도시가 되려면 모험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인문정신으로 정치를 하고자 했던 공자의 일생 자체가 모험이었듯이 인문으로 시정을 편다는 것이 만만치는 않기 때문이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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