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약이 아니다

세월호 둘러싼 온갖 의혹들 낱낱이 밝혀내야
그렇지 않으면 또다른 세월호가 침몰할 수도
유족들 아픔 치유위해 제대로 된 특검법 만들길

김도연

발행일 2014-08-15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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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소설가
지난 봄날 나는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 자리한 문인집필실에 입주해 있었다. 그곳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술을 마시며 봄날을 건너가던 중이었다. 때늦은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마침내 봄을 알리는 목련이 하나둘 피었다. 어느 날 비가 눈으로 변해 아직 활짝 피어나지도 못한 목련이 얼어버렸고 그 참담한 모습을 목격한 시인·소설가·동화작가들은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 얼마 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태운 한 척의 배가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잔인한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도착했다. 그 사이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일부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말복과 입추가 겹친 날 세월호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곧바로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세월호 특별법 무효를 선언했다. 요지는 이렇다. 참극에 대한 1차 책임이 있는 집권세력이 진상조사위와 특검을 꾸리는 주도권을 갖게 됐다는 것.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특별법 합의는 의미가 없다는 것. 게다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가 무슨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득권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동시에 축소·은폐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넉 달 동안 우리는 착잡한 심정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술을 마시다가도 문득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술에 취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이 웃음이 과연 온당한 웃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의 웃음을 황급히 지우기도 했다. 복 더위를 넘기기 위해 삼계탕 집에서 닭 뼈에 붙은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다가도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어 젓가락을 놓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아직도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뜨거운 천막 안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술 냄새를 감추고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입술에 묻은 기름기를 닦은 채 저자거리를 떠나야만 했다. 혹시 우리의 불의(不義)로 인해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죄의식을 껴안은 채.

세월호를 둘러싼 온갖 의혹들이 세상에 떠다니고 있다. 동시에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조금씩 세월호를 잊어가고 있다. 잊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세월은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돌아가고 새로운 사건은 마치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뻥뻥 터진다. 하지만 우리는 저 캄캄한 바다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외롭지 않도록 기억해야만 한다. 언제·어떻게·누가·무엇을 잘못해서 그리 되었으며, 또 누가 무엇을 감췄고, 누가 어떻게 꼬리를 자르고 달아났는지 하나하나 또렷하게 밝혀내고 머리에 새긴 뒤에야 비로소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앞에 겉모습만 바뀐 세월호가 도착해 다시 침몰을 준비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 세월호에 탑승할 여행객이 바로 나일지도, 당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세월호, 또 그 다다음 세월호, 앞으로도 똑같이 침몰할지 모를 무수한 세월호들에 우리가 오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은 약이 아니다. 세월이 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은 결국 세월이 약이라고 우기는 특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게 틀림없다. 온갖 의혹들의 시비를 밝히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 그리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은 제대로 된 특검법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지난 봄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며 동시에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김도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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