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반란이 반갑다

원용진

발행일 2014-08-18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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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방자치제 이후 지역살림은
나아지기보다 퇴보하는 느낌만
중앙에 대해 '아니오' 라는건
불협화음이 아니라 중앙과
아름다운 협주를 원하는
간절함의 발로로 이해해야


일본 정치에서 파죽지세의 기를 올리던 아베 수상이 움찔했다. 집단자위권 행사, 아베노믹스로 거칠 게 없어 보이던 아베가 의외의 일격을 당했다. 8월 9일 나가사키시의 원자폭탄 희생자를 기리는 자리에서 다우에 도미히사 시장은 아베의 공격적 안보정책을 비판했다. 올해 제정한 나가사키 시의 평화선언을 들며 전쟁포기의 평화헌법 정신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행사에 참여해 안보 정책의 정당성을 담은 연설문을 매만지던 아베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자리가 아니었다.

아베의 심사를 긁는 또 다른 반발은 오키나와에서 불거졌다. 오키나와내 미국 해병의 후텐마 기지 이전을 위해 필요한 헤코노 해안 개발을 앞두고 해당 지역 지자체장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해당 지역인 나고시의 이나미네 스스무 시장은 필요한 모든 행정 절차를 거부할 것을 천명했다. 일본 본토가 같이 나눠야 할 짐을 오키나와에 과도하게 떠맡기고 있다며 아베 내각을 강하게 비판했다. 군사균형을 기반으로 한 안보정책은 시대를 역행하는 낡은 정책이라며 중앙 정부에 협조하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작년 도쿄 도지사 선거 때는 아베의 원자력 발전 정책을 비판, 반대하는 슬로건을 내걸고 집권당에 도전한 강력한 후보도 있었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집권당의 원자력 정책 자체에 큰 흠집을 냈다. 유권자들에게도 그 정책의 비정당성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냈다. 앞으로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이 문제는 가장 뜨거운 핵심 의제가 될 것이 뻔해졌다. 집권 여당도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더 이상 정책집행이 어려워졌음을 절감하고 있다.

이러한 지자체에서의 반란은 큰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기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제 몫을 못하는 일본 정치 실정에서 지자체장들의 이유있는 반대는 정치를 정치답게 만들고 있다. 지자체가 여론 정치 과정에 적극적 주체로 참여해 여론을 견인하거나 반영하면서 중앙 정치무대에서의 미진한 대의정치를 지자체가 교정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른바 주민과의 직접적 소통을 기반한 소통정치를 펴는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중앙정부의 추상적 탁상행정을 물리치고 지역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는 이른바 지방자치제의 존재 이유를 실행하는 효과도 낸다. 지도를 펼치고 자와 색연필로 줄을 죽죽 그어대며 시행했던 중앙정부의 개발정책의 폐해를 반복하지 않는 결과를 낸다. 떡을 만지는 중앙정부의 손에서 떨어진 고물을 주워 먹는 대신 직접 떡을 빚으며 운명을 개척해 보겠다는 의지를 시민과 나누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모범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의 단호한 태도들이 이 땅에서도 여기저기 머리를 내밀고 있다. 강원지역의 원자력 발전 유치를 반대한 후보가 지자체장으로 선출된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엔 제주자치도의 도지사가 중앙정부의 카지노 증설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 지역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거나, 지역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일방성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여진다. 지역이기주의라는 비난 대신 박수가 더 많았다. 중앙이 하면 지방은 따른다거나 중앙에 기생해 지방이 살아간다는 패러다임이 더 이상 정답이 아님을 세상의 인심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의 지자체가 벌이는 거역이 반가운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자치제 이후에도 지역의 살림은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한 감이 있다. 중앙의 지원없이는 독립이 어려운 지자체가 생기는가 하면 아예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지역도 있었다. 더 이상 그를 반복할 수는 없다. 지역이 중앙의 볼모가 되거나 식민지가 되어선 안될 일이다. 중앙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일은 불협화음이 아니라 지역이 중앙과의 아름다운 협주를 원하는 간절함의 발로로 이해해야 하겠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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