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와 이순신

배종찬

발행일 2014-08-2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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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선봉 주저하지 않은 교황,
기개 보여준 이순신…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각계 지도층의
'실천적 용기'가 없다면
대한민국호의 미래는 없다


불볕더위로 잠 못 이루게 했던 여름이 끝나간다. 여름휴가를 여유롭게 즐길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국 기자가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휴가를 보내다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 영국의 카메룬 총리는 미국기자를 처형한 사람이 영국인이라는 비보에도 간단한 성명만 내놓고 휴가지로 돌아갔다. 여론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휴가중이었던 아베 총리는 수재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는데 제대로 처신 못해 따가운 손가락질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국정으로 정신없는 국가 지도자에게 적당한 휴식을 줘야 한다는 동정론도 있다. 하지만 휴가나 휴식을 꼭 그 시간에 가져야 했던가. 국가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언제라도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인가.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온 나라는 교황 프란치스코와 성웅 이순신 '앓이'를 하고 있다. 교황은 한국의 중요한 무역상대국 지도자도 아니다. 이순신 장군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부각된 인물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무엇이 이토록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그리워하고 더 존경하게 되는 것일까. 바로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준 리더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지도자라 불리고 리더로 자처하는 인물은 넘쳐난다. 하지만 말한 것을 진정성있게 실천하고 설득력있게 소통하는 지도자는 생각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순신 장군의 말과 행동을 비춰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난제들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일어나 비추어라'였다. 바로 소통속의 실천이다. 어느 누가 됐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 경청하는 것이다. 100일이 넘도록 정치권은 세월호대책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그러나 고작 100시간을 머무른 교황은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큰 위로를 전달했다. 교황이 보여준 행동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일어나 찾아가서 들어준 것이다. 교황의 입장과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고 둘러댈지 모르겠다. 모든 갈등 극복의 우선 조건은 '소통'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합의점을 찾는 것은 기본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비단 세월호사고 한가지일까. 수많은 갈등의 현장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그리워진다면 여야 정치인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황은 이러한 소통을 실천함으로써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 '명량'의 흥행돌풍이 무서운 기세다. 수많은 영화중 왜 우리 국민 3분의 1 가량이 보았을 정도로 인기를 끄는 것일까. 이순신 장군의 '애민(愛民)'정신이다. 국가지도층과 정치인들은 말로만 국민을 외쳤지 정작 국민들은 그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혐오감만 커졌을 뿐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시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선조임금에게 목숨을 내걸고 바다를 지킬 것을 맹세한다. 과연 지금의 '관피아'로부터 보여지는 전형적인 모습이라면 가능한 일일까.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 책임을 다른 장수에게 떠넘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웅 이순신은 나라의 근간인 백성들의 안위를 외면하지 않았다. 명량대첩 12척의 기적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과 백성들의 합작품이었다. 그곳에 국가는 어떤 기여와 희생을 했는가. 지나간 국가 최고 리더십에 대한 역사지만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의 희생적 애민정신이 없었다면 왜군은 손쉽게 우리 강산을 무참하게 유린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세계적인 기업인들은 꽤 있지만 세계적인 지도자는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경제와 학문은 압축성장이 가능하지만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는 핑계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실천에 주저하고 희생을 두려워하는 기회주의에 있는 것은 아닐까. 방탄차를 마다하고 선봉을 주저하지 않은 프란치스코와 이순신의 용기를 우리 국가지도자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각계 지도층의 '실천적 용기'가 없다면 대한민국호의 미래는 없다. 바뀌지 않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수십년이 지난후에도 프란치스코와 이순신을 그리워할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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