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화도 결국 돈이다

정말 예산없어 문화판 매번 뒷전에 세울거라면…

민간자본을 공적영역으로 수혈할 행정력 보여야

이도저도 아니면, 손가락만 빨라는건 잔인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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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인수 문화부장
문화판에서 돈 타령하면 사이비로 몰렸던 시절이 있었다. 예술인들이 가난을 낭만인 양 즐기고 저항의 뿌리인 양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도 다르지 않다. 돈 되는 기획이나, 전주(錢主)의 후원으로 성공하는 공연기획자나 예술가를 백안시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자본의 개입 여부를 예술의 순수성과 예술인의 자존심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기는 전통은 면면히 흐른다. 맞다. 한 사회의 문화나 한 시대의 정신을 그려내는 예술인들이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거나 예속돼서는 안된다. 사회의 자화상과 시대의 정신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투입없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는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문화분야라고 예외일 수 없다. 다만 문화분야에 투입되는 자본의 성격은 제한적이다. 독립성과 창의성, 자발성이 생명인 문화분야의 특성상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의 자본, 즉 예산 투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민주화된 시대에, 문화는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이다. 문화SOC를 확대하고 두텁게 하려는 정부의 지원은 당연한 일이 된지 오래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하고 시행한 것도 이 때문 아닌가.

그런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곳간이 비었단다. 많은 예술인과 예술단체, 문화기관들이 정부예산이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에 목을 매며 줄을 선다. 하지만 매번 선착순에 밀려 꼴찌를 독차지하고 받아내는 돈은 푼 돈이다. 정부나 지자체 모두 문화SOC확충을 약속했지만 돈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문화융성은 언어의 성찬으로 끝나고 문화판은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니 공공이 아닌 민간 전주를 찾아 손을 벌려야 하고, 자본에 영합하고 소비자의 비위에 맞는 특정분야가 문화판의 주류로 떠올라, 문화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금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거의 매듭지었다. 순수 추가예산만 1조7천847억원이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문화의전당 등도 손을 벌렸다. 십수억원에서 수십억원 규모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시설관리예산 몇억원 남기고 사업비는 거의 전액 삭감됐다. 교육청 및 시·군 법정전출금과 국고보조사업비 1조1천억원 가량을 떼어낸 뒤 우선사업을 헤아리다 보니 문화분야 지출은 힘들다는 결론이 난 모양이다.

없다는데야 할 말이 없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는건가. 예산을 대신할 자본을 끌어올 행정력을 발휘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경기도에는 많은 대기업 본사들이 있다. 이 대기업들과 지역문화기관을 짝 지워 주는 행정은 어떨까. 기업은 사회공헌으로 빛나고 문화기관들은 안정적인 후원자를 얻을 수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조항을 활용하면 된다. 후속조치와 비전을 준비중인가?

SK는 지난해 대형 문화예술공연센터를 수원시에 기부채납했다. '수원SK아트리움'이다. 같은해에 현대산업개발은 가칭 '수원아이파크미술관' 기공식을 가졌다. 역시 수원시에 기부채납된다. 아파트건설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협약을 이행한 결과다. 모두 300억원 짜리 건물들이다. 둘다 건물로 받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들이야 어차피 환원해야 할 이득금 일부로 자기 이름 박힌 건물 건네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건네받은 수원시는 항구적인 문화사업과 관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두 건물을 유지하는 경상비용 만큼 문화사업 예산을 잘라내야 할 판이다. 두개 모두든 한개든 기금으로 받았으면 어땠을까. 현금으로 받을 방법이 없었다는데 묘안이 없었을까.

주장의 골자는 이렇다. 정말 예산이 없어 문화판을 매번 뒤에 세울거라면, 민간자본을 공적영역으로 수혈할 행정력이라도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문화판은 매번 손가락만 빨라는 것이니 잔인한 짓 아닌가.

/윤인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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