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썩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비전투적 요소에 전력 너무 소모 안타까워
'시간낭비' 아닌 성공인생 위한 디딤돌로 활용
자기발전 계기 삼을때 병영문화 건전해질 것

이준구

발행일 2014-09-03 제31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남자들 둘만 모이면 군대 얘기다. 실역을 필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2박3일간 밤을 새워 해도 모자란다. 여자들이야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여기에 군대에서 비오는 날 축구하던 얘기까지 나오면 지긋지긋하다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데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온통 군대 얘기다. 총기를 난사해 전우들을 죽인 임병장, 선임들의 구타에 못 이겨 사망한 윤일병 사건 등으로 온통 관심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군에 보낸, 또는 보낼 아들이 있는 엄마들도 초조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모두 다 귀한 자식들을 둔 부모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 역시 늦게 둔 막내가 아직 사병으로 복무중이어서 뉴스에 귀를 기울이기는 마찬가지다.

또 군대 얘기다. 1979년 9월 101보충대(지금의 306보충대)로 입대했으니 꼭 35년 전이다. 신병 훈련도중 나는 처음으로 폭력을 목격했다. 신병교육대 중대장이 소대장(교관)의 무릎을 발로 차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조인트'를 날리는 것이었다. 이내 소대장은 저 멀리 도망쳤다. 장교끼리의 폭력을 직접 목격했으니 사병간의 폭력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던 시절이다. 후반기 교육이 시작될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10·26 사태다. 이등병 신세에 전쟁이 나는 줄 았았다. 완전군장을 꾸리고 전쟁채비를 했다. 두려움 그 자체였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가자마자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별들의 하극상 전쟁'에 영문도 모른 채 끼여 한 축이 돼버렸다. 정말 정신차릴 수가 없었다.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고참병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툭하면 집합당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정신교육과 얼차려를 받았다. 곧이어 발생한 광주민중항쟁 등 암울한 시대적 상황들은 군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래도 당시는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모두가 사명감이 있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여서인지 나라를 지킨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목욕시설은커녕 우물물도 제대로 안나오던,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는 열악한 여건이었다. 그런데도 그때 그시절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내무반에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엄격한 군기속에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남자들만의 끈끈한 전우애가 있었다. 그때의 전우들과 35년이 지난 지금도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조사를 챙기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의 군대는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예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좋아진 시설이나 보급품, 선후임 관계 등이 그것이다. 요즘 신세대 병사들이 나약해진 것 아니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핵가족 시대에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때로는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 원인도 있을 것이다. 민주화도 좋다. 신세대 사병들의 트렌드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군의 생명은 군기다. 나아가 군인들은 사기와 명예를 먹고 산다. 그런데 요즘 군에 대한 신뢰가 말이 아니다. 군대는 마치 매맞으러 가는 곳처럼 돼버렸다. 국가수호에 대비해 교육훈련에 열중해도 모자랄 판에 비전투적 요소에 전력이 너무 소모되는 게 안타깝다.

어느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군대 가서 뺑뺑이 돌고, 몇 년씩 썩고 온다." 군통수권자가 군을 불신하는 듯한 발언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대통령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2003년 발간된 '성공하고 싶다면 군대에 가라'의 공동저자였다.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많은 사람들이 군복무가 '시간 낭비'가 아닌,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디딤돌'과 미래발전의 귀중한 기회로 활용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군대를 가는 것이 '썩으러' 간다거나 '때우러' 간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군복무를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을 때 병영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건전해질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군대는 결코 '썩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이준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