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없는 아이들·1]불법체류자 2세로 태어나다

한국서 나고자랐는데… 수천명 '무국적' 방치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4-09-15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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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삶'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내 한 옛 기지촌 골목. 슬럼가로 변한 이 동네에서 사라와 안젤라(가명)가 이웃 주민에 안긴 채 골목길을 걸어 나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들과 같은 흑인 어린이들과 동남아계 어린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아이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을 갖지 못한 채 유령처럼 살고 있다. /최재훈기자
단속 피해 숨어살아야하는 부모
출생신고도 못해 서류상 '유령'
교육·복지 등 사각지대 내몰려


'코리안 드림'에 부풀어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해외 이주민, 이들은 꿈을 이뤄 금의환향하기도 하지만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기약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기도 한다.

불법체류자들에게 코리안 드림은 그저 악몽일 뿐이다. 이들을 더욱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의 2세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2세들은 부모의 신분 때문에 국적 취득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국적도 없이 유령처럼 살아가고 있다. 엄연히 생존해 살아가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경인일보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무국적 아이들의 삶과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경기도내 한 도시. 과거 기지촌으로 화려했던 이곳은 지금 슬럼가로 변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골목마다 검은 피부의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검은 피부에 유난히 초롱초롱한 큰 눈, 똘똘하게 생긴 사라(가명)를 만났다. 11개월 된 사라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 한글과 영문 간판이 뒤죽박죽 내걸린 상가 틈새의 비좁고 지저분한 거리를 맨발로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관련기사 3면

골목엔 사라 외에도 서너명의 아프리카와 동남아계 아이들이 더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서려 하자 아이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더니 재빠르게 어둑한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사라는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사라의 누나인 안젤라(가명·5)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들은 그 어떤 서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분관계를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유령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라의 엄마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건너온 이주민이다. 현재 그녀는 이미 비자 기간이 만료돼 당국의 눈길을 피해다녀야 하는 불법 체류자 신세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남편도 같은 처지로 몇년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네 미용실에서 보조일을 하며 받는 돈으로 이들 네 식구는 힘들게 살고 있다.

또 다른 지역에서 만난 마이클(가명·10)은 취재진을 만나자 수차례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강조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이클 역시 한국에선 존재하지 않는 무국적자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적없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2천~3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아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불법이라는 미명하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이들은 20세를 넘어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고 교육과 취업의 한계에 봉착하며 우리 사회의 잠재적인 불안요소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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