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없는 아이들·1]불법체류자 2세 인생살이

'몸만 어른' 사회구성원 역할 못해
어렵게 교육 받아 성인돼도 대학 진학·취업문턱 못넘어
정부 실태조사조차 안해… "아동엔 출생등록 권리줘야"

윤재준·최재훈·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4-09-15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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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와 안젤라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이 없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이들 남매는 한국에서의 출생신고는 꿈도 꾸지 못한다. 국적법 때문이다.

자국인 라이베리아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는 것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려면 무엇보다 출생증명서와 같은 여러가지 서류들이 필요한데, 혹여 이 서류들로 인해 출입국사무소에 발각돼 강제출국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사라 남매의 몸에는 아픈 상처가 있다. 이들의 배에는 배꼽 대신 어른 손가락 두마디 만한 혹이 튀어나와 있다. 출생 당시 신분이 탄로날까 두려워 병원조차 가지 못하고 부모가 집에서 탯줄을 잘못 자른 탓이다.

이같은 상처는 비단 사라 남매만의 일이 아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무국적 아이들은 아무리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가지 못한다.

국적도 없고 출생등록도 안돼, 감기에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의료보험 미적용에 따른 병원비도 문제지만, 병원 진료 접수과정에서 불법 체류 신분이 탄로날까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사라 부모는 "아이가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안젤라는 몸에만 상처가 있는 게 아니다. 국적이 없기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못한다. 하루종일 골목어귀를 돌아다니거나 엄마 미용실 주변을 혼자 어슬렁거린다. 행여나 단속이라도 나오면 하루종일 꼼짝없이 집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불법체류자 자녀들을 기피한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준다 할지라도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한달에 40만~50만원이상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안젤라와 같이 교육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무국적 아이들은 유아기간동안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한국말을 못해 결국 정규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되기 일쑤다.

다른 지역 초등학교에서 만난 마이클(가명·10)은 그래도 운이 좋은 경우다. 마이클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렵게 초등학교에 입학 후 학교에서 진행하는 특별한글수업 때문에 지금은 한국말을 곧잘한다.

무국적 아이들은 자신들을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믿고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마이클이 연신 "한국에서 태어났어요"라고 강조한다.

자신은 분명 한국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선생님은 내가 3살 때 나이지리아에서 왔다고 했지만, 아빠는 분명히 한국에서 날 낳았다고 말했다"며 자신이 한국인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마이클의 아버지는 마이클을 입학시키기 위해 학교에 "마이클이 3살 때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국적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이클이 어렵사리 한국 초·중·고교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20세가 넘으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학교는 다녔지만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 해도 대학진학도, 변변한 일자리도 잡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 사라와 안젤라, 마이클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었음을 알게된다.

2014년 7월 기준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 수는 18만7천여명. 이들 중 19세 이하 아동불법체류자 수는 2천~3천여명에 이른다. 이는 어디까지나 어림잡은 수치일뿐 실상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돕는 시민사회는 "정부는 불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며 "불법체류자의 자녀라 할지라도 아동은 어떤 이유에서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 이영아 아시아의 창 소장도 "유엔에서는 아동에 대해 등록될 수 있는 것 자체가 권리라고 이야기한다. 즉 그들의 부모가 불법이든 아니든, 아동들은 이 땅에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출생등록의 권리를 줘야한다"고 설명했다.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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