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6]이천-1

끊어진 산맥이 사람을 품지 못하니… 안타깝다

박상일 기자

발행일 2014-09-16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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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비옥한 땅, 번성했던 요충지… 큰 인물 안나와
설봉산 우백호 기운과 좌청룡 칼바위 '불균형'
자연은 잘못없지만 부족한 곳 시가지 선정 '아쉬워'


이천시는 예부터 땅이 기름져 부유한 고장으로 꼽혔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인 권근이 지은 '이천향교기'에도 이천은 '땅은 넓고 기름지며 백성은 많고 부유하다'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이천의 복판을 지나는 복하천을 따라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는 쌀알이 맑고 기름져 밥맛이 으뜸인 좋은 쌀이 생산되는데, 여주쌀과 함께 예부터 임금에게 진상된 진상미로 전국 최고쌀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천에서는 눈에 띌만한 큰 정치가나 학자 등의 인물이 많이 나지 못했다. 고려때 거란의 침입을 외교 담판으로 물리친 서희(942~998)와 조선후기 신미양요때 항전 끝에 전사한 어재연 장군(1823~1871) 정도가 이천의 인물로 꼽힌다.

오랜 옛날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삼국시대에 중요한 요충지로 꼽혔으며, 조선 세종때에는 비옥한 땅에 주민이 많이 살아 도호부로 승격될만큼 번성했던 것에 비해 큰 인물은 별로 나오지 못한 셈이다.

"이천은 풍수적으로 볼때 눈에 띌만한 좋은 산도 많지 않고, 산의 모양도 잘 생기지 못해서 큰 인물을 내기에 역부족인 형세입니다. 진산으로 꼽히는 설봉산이나 원적산, 도드람산 등을 보아도 모두 바위가 많고 기운이 부족해요. 인근 여주의 산들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곳곳에서 인물을 배출한다는 일자문성과 토채를 이루고 있는 것과 달리, 이천의 산들은 맥이 이어지지 못하는 모양새로 인물을 내기가 어려운 형세여서 아쉽기만 합니다."

이천 출신이면서도 이천의 풍수에 대해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조광 선생과 함께 이천의 진산(眞山)중에서도 가장 중심으로 이천시가지를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설봉산(394m)을 찾았다.

설봉산이 산자락을 펼쳐 품은 곳에는 아담한 설봉호를 중심으로 설봉공원이 조성돼 있고, 설봉공원의 가장 안쪽인 설봉산 자락 끝에는 이천 도자문화의 메카인 도자기축제 행사장과 이천세라피아, 이천시립 월전미술관 등이 자리해 있다.

마침 찾아간 때가 올해 이천도자기축제(8월 29일~9월 21일)가 한창일 때여서, 많은 관람객들이 축제장을 찾아 이천의 도자기와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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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도자기축제 행사장은 지난 2001년 경기도가 이천·여주·광주를 무대로 '세계도자기엑스포 2001 경기도'를 개최하면서 조성한 것으로, 인근에 자리한 이천도예촌과 함께 이천 도자기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설봉호(설봉저수지)의 제방쪽에서 바라보면 도자기축제 행사장과 설봉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설봉산은 가운데 부분에 조금 높게 솟아오른 희망봉을 중심으로 좌우로 품을 펼쳐 도자기축제 행사장과 설봉호를 감싸안고 있다. 도자기축제 행사장은 설봉산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앞쪽으로 설봉호를 내려다보니 풍수의 기본이 잘 이뤄진 곳에 자리한 셈이다.

"그냥 보기에는 도자기축제장과 설봉공원 일대가 명당의 요건을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설봉호수가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여서 좋은 기운을 담기 역부족인데다가, 좌우를 감싼 설봉산 자락 중 명예를 담당하는 좌청룡의 맥이 이어지는 곳에 칼바위가 솟아 있어 또한 좋지 않은 형세입니다. 이천이 도자기엑스포의 주무대로 여주·광주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규모가 큰 도예업체들이 많이 있음에도 도자산업이 눈에 띄게 발달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과 함께 월전미술관 옆 산길을 올라 설봉산 정상 조금 못미쳐에 자리한 영월암으로 향했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때 의상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깊은 사찰로, 대웅전 뒤쪽으로 온화하게 서 있는 영월암마애여래입상(보물 제882호)이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영월암의 대웅전은 마애여래입상이 서있는 작은 언덕을 뒤로 두고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데, 바로 오른쪽 위로 설봉산의 주봉인 희망봉이 솟아 우백호의 기운이 압도하고 있는 반면, 왼쪽은 좌청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채 내리막이어서 풍수적으로 볼때 균형이 맞지 않는 형국이었다.

설봉산의 정상인 희망봉은 영월암에서 등산로를 따라 약 1㎞의 언덕길을 오르면 만난다. 정상의 설봉산 표지석 앞에 서면 도자기축제장과 설봉호수는 물론 이천 시가지 대부분과 멀리 하이닉스반도체 주변까지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멀리 시가지가 끝나는 부분에는 '구만리뜰'이라 불리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설봉호수 조금 옆으로는 새롭게 조성돼 시청·시의회와 경찰서, 세무서, 아트홀 등이 들어선 행정타운이 한눈에 들어온다. 행정타운은 설봉산 자락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보기에도 이천 시가지 주변으로 눈에 띄는 산들이 없어요. 지나치게 평야가 발달하면서 기운있는 맥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죠. 본래 시가지 인근에는 영상사가 솟아 재물복을 나눠줘야 하는데 그런 산이 없는 것도 허전한 부분입니다. 새롭게 옮겨간 행정타운도 설봉산의 품에서 벗어나 풍수적으로 별로 볼게 없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아쉽기만 합니다."

설봉산 정상 희망봉에서 남쪽과 북쪽 중 좀더 둘러볼 것들이 많은 북쪽편 길을 택했다. 이곳에서 산봉우리들을 타고 1㎞ 조금 못되는 거리를 걸으면 능선의 내리막이 좀더 급해지는 지점에 유명한 '칼바위'와 사직단, 봉화대, 남장대지, 새천년의탑, 설봉산성 등이 몰려 자리하고 있다.

마치 부러진 칼이 땅에 박혀 있는 듯한 모양의 칼바위 주변은 설봉산성이 에워싸고 있고, 봉화대와 남장대 터가 남아있어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칼바위 뒤편에는 삼국시대부터 제를 지내왔다는 팔각형의 제단인 '사직단'이 자리해 있는데, 지금도 이천시에서는 해마다 중요한 일이 있을때마다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옛날 이곳을 두고 삼국이 각축을 벌일때에는 칼바위가 중요한 의미가 있었겠지요. 그때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할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고, 풍수적으로 볼때 칼바위는 난폭하고 흉한 기운을 의미하는 좋지 않은 바위입니다. 이곳에서 이천의 미래를 기원하는 탑을 세우고, 매년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는 것이 어쩐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설봉산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도자기축제장 쪽으로 내려오니 허전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조광 선생은 "이천은 애초부터 시가지 위치를 잡을때 부족함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며 "원래부터 그 모양이었던 자연은 잘못한 것이 없고,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니 사람을 탓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고향에서 느낀 아쉬움을 털어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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