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

최부의 '표해록'… 세계3대 중국견문록 손꼽혀
비전과 희망 보여준 진정한 나라의 공복(公僕)
존경의 힘 필요한 '21세기 최부'를 기다리며…

윤재웅

발행일 2014-09-1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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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의 관리였다. 스물여덟 과거에 급제하고 3년뒤 성균관 정6품이 돼 서거정과 함께 민족의 역사서인 '동국통감'을 편찬하는데 힘을 쏟는다. 그 뒤 새로운 직책을 명받아 1487년 9월 제주도로 떠난다. 추쇄경차관. 정확한 인구조사가 임무다. 그러던 중 이듬해 정월 부친상을 당해 거친 바다에 배를 띄워 고향인 나주로 향한다. 일원 42명과 함께 배에 오른 이 항해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풍랑을 만나 정처없이 표류한 끝에 남중국 태주부 임해현 우두산 아래 당도한다.

최부 일행은 중국 내륙 운하를 따라 베이징까지 이른 다음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다. 표류한지 넉달 보름만이다. 왕명을 받들어 그간의 일을 소상히 기록해 바쳤는데 이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이 책은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9세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13세기)과 함께 세계3대 중국견문록으로 손꼽힌다. 15세기 중국 저간의 사정을 이토록 정밀하게 서술한 기록은 중국 내부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는 마르코폴로처럼 구술방식을 택해 과장하지 않았으며 일본 승려 엔닌처럼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 험한 여정속에서도 '조선의 관리'로서 기품과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

'표해록'의 역사적 가치는 크다. 15세기 중국 동부지역에 대한 세밀한 기술은 그가 '동국통감'을 편찬하던 엘리트 문필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만들어낸 나라. 왕명으로도 고칠 수 없는 추상같은 엄정함의 정신. 그 방대하고 정밀한 데이터베이스. 이러한 문화콘텐츠가 최부같은 교양인의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의 가치는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고난 극복의 스토리텔링 구조에 공익의 리더십이 강해서 오늘의 답답한 현실에도 호소력이 강하다. 최부는 어떠한 난관에 닥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빗물받을 그릇조차 없어 오줌을 받아 식수로 마셔야 했고, 금은을 요구하는 해적이 어깨에 작두를 내리치며 겁박해도 "몸뚱이를 뭉개고 뼈를 부순다고 해서 금은을 얻을 수 있겠는가"며 물러서지 않았다. 해안에 표착해서는 왜구로 오인받아 모진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더로서의 지혜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 가장 귀감이 되는 것은 함께 한 42명 전원과 동반 귀국했다는 점이다. 136일간 파란만장한 고난의 여정동안 그는 어찌하여 단 한 사람도 잃지 않았던가.

참된 지도자는 간난신고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이순신이 그러했고 그보다 100년 전엔 최부가 바로 지도자의 전범이었다. 아쉽다. 위대한 기록의 나라 조선의 선조들은 그러했는데 오늘 이 땅엔 참된 지도자가 귀하다. 불신과 배타의 논리가 유령처럼 어슬렁거리고 아프고 심란한 국민 모두의 마음 함께 껴안으려 하지 않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맞으면서 최부는 일행들에게 당부한다. "우리는 생사고락을 같이해 골육지친과 다름없으니, 지금부터 서로 돕는다면 몸을 보전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구하고, 한 그릇의 밥을 얻으면 같이 나눠 먹는다. 병이 생기면 같이 돌보아 한 사람이라도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할 것이다."

최부는 어떻게 모두를 살렸던가. 그는 매순간 문제 해결을 주도했다. 공동체 정신을 강조했고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당부는 왕명보다 지엄했다. 그리하여 그에겐 '존경'이라는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존경'의 힘으로 42명 전원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존경'앞에서는 낙심도 원망도 미움도 다 사라진다. 생명의 열망과 내일의 희망이 새로 생겨난다. 이런 존경의 힘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조롱이 비판적 지성으로 위장되는 사회에 존경을 새롭게 초대해야 한다. 최부가 진정 나라의 공복아닌가. 좋은 나라 멀리에서 찾을 필요없다.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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