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건희, 포스트 재벌

김방희

발행일 2014-10-0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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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유능한 경영자 보다
무조건 장남 고집하는
후계 방식만으로는
재벌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1990년대 초에는 이른바 '재벌 문제'가 주요 경제정책 사안이었다. 정부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각종 규제책을 쏟아낼 때였다. 비업무용 부동산 규제책이나 업종 전문화 정책 등이 그 때 나왔다. 훗날 당시 정부와 재벌간 갈등의 배경이 밝혀졌다. 대통령과 경제수석, 그리고 재벌총수가 참석한 만찬장에서 벌어진 사소한 감정다툼이 시발점이었다. 고도성장 이래 가장 야심찼던 재벌정책의 기원치고는 다소 맥 빠지는 일이었다.

그 무렵 정부정책을 계기로 재벌문제와 해결책이 백가쟁명 식으로 터져 나왔다. 다만 재벌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합의된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규제책만 중구난방으로 나올 뿐 초점이 불명확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 신분으로 외부의 재벌 전문가를 만났다. 한국의 재벌성장사에 정통한 일본 도쿄대의 하토리 다미오(服部民夫) 교수였다. 그에게 재벌문제의 본질과 해법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 무렵 한국민과 정부의 재벌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지나치다고 단언했다. 이유를 묻자 다소 뜬금없다 싶은 답을 했다. "한국 속담에도 있잖아요. 부자가 3대 못 간다고…."

솔직히 당시는 그의 대답을 익살스러운 애교 정도로 받아들였다. 전문가의 진단치고는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그 발언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고는 한다. 외환위기 무렵 우리 30대 재벌 가운데 18개 가량이 파산하거나 주인이 바뀌는 비운을 맞았다. 그 대부분이 후계문제를 안고 있던 재벌 그룹들이었다. 무능한 자녀를 후계자로 선택했거나 후계 과정에서 자녀간 분쟁을 겪던 곳이었다.
한국 전체가 '포스트 이건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 다시 하토리 다미오의 말을 되새기게 되는 요즘이다. 아니, 지난 5월10일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온 국민이 삼성그룹과 재벌의 미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경제의 삼성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게다가 다른 재벌들 역시 이미 결정된 후계자가 미래를 제대로 개척해 나갈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 회장이 병상에 드러누운 지 140일이 지나가는 동안 소문과 해명 사이에 숨바꼭질이 거듭돼 왔다. 이상설, 심지어 사망설이 제기되면 해당 그룹과 병원이 상황 호전소식을 전하는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그가 실질적으로 사망해도 죽었다고 발표할 수 없는 저간의 사정에 대한 풍문이 떠돌았다. 그러자 삼성은 이 회장의 건강상태가 꾸준히 호전돼 휠체어에 옮겨 앉을 정도는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모든 해프닝이 이건희 이후의 삼성이 얼마나 불안한가에 대한 대중과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5월 이후 삼성그룹의 주축 기업인 삼성전자의 20%가 넘는 주가 하락을 설명할 길이 없다. 후계자 당사자로서도 민망할 일이지만, 오랫동안 후계문제에 골몰해온 해당 재벌로서도 낯부끄러운 일이다. 조직이나 시스템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해온 재벌이 이 정도다. 다른 재벌들의 후계문제가 앞으로 또 얼마나 대중과 시장을 불안하게 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삼성의 최대 라이벌이라는 애플 역시 스티브 잡스라는 창업주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높던 회사였다. 그가 자신의 후계자로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의 팀쿡을 선정했을 때는 불안감도 컸다. 단지 장부의 달인(master of spreadsheet)이 혁신기업의 면모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그는 최근 새로운 스마트워치와 결제시스템 등을 발표함으로써 불안과 우려를 거의 불식시켰다. 유능한 경영자가 아니라 무조건 장남을 고집하는 재벌의 후계 방식만으로는 재벌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 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하토리 다미오 교수의 말처럼, 3대 재벌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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