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세월호 참사와 여교사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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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
가해자도 피해자도 입장이
바뀔 때가 있으므로 우리모두
직간접적 공범관계일 수 있어
상대 배려하는 균형감각 절실
비상탈출구 안내와 심폐소생술
숙지 시작한 선생님이 커 보여


얼마전 어느 중학교의 여교사로 근무하는 선생님과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있었던 어느 모임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됐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침몰 원인, 유병언 죽음, 단식투쟁, 책임소재, 세월호법 제정, 대리기사 폭행사건 등 식상할 정도로 다양한 뉴스거리가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에 정답을 아는듯이 물었다. "선생님은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요즘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제가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다소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가 사고로 야구방망이에 맞아 고통스럽게 쓰러져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119에 전화하라고 소리를 박박 지르고, 아이의 몸뚱이를 안고 내가 너를 살려줄테니 제발 정신만 잃지 말라고 악을 쓰지 않았을까요?"

선생님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목숨을 건진 교감선생님마저 스스로 목을 매신 것일까? 그렇다면 당시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뱃속에서 아이들과 운명을 함께 했던 단원고 선생님들은 "얘들아, 정신 바짝 차려! 우리는 살 수 있어!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을게!"라고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순간 뭉클해짐을 느꼈다. 죽음의 공포가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됐을 것이다. 물론 그 시간은 길지 않았겠지만.



"저는 요즘 긴급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저부터 숙지하려고 열심히 메모하고 시험해 보고 있어요. 저마저 허둥대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자신있게 비상탈출구로 안내하고, 심폐소생술도 해야 하니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잠시나마 세월호의 어두운 그림자가 거둬지는 것 같았다. 희망의 실타래는 이렇게 풀려져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9월의 어느 날, 한 대학의 강의실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강생들의 의견이 분분하게 오고가고 있었다. 기본을 망각한 양심없는 선장과 선원, 무능하고 부패한 마피아 공무원, 희대의 3류 추리소설을 연출한 유병언씨 일가, 세비만 축내고 있는 정략적 정치인, 지루하고 검증되지 않은 해설로 넘쳐나는 종편방송까지 거론이 됐다. 이렇게 찾아낸 적들 하나하나에 대한 확인사살이 끝나고 있을즈음 한 수강생이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 일가라던데 연루된 사람중 제 친척분도 계시거든요. 그 분 진짜 참 좋은 분이세요." 그리고는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죄인과 적들이 모두 달나라에서 날아온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 이웃이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냐고 했다. "선장이나 선원들도 모두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일텐데 자식과 같은 학생들을 버리고 어찌 자기들 목숨만 건지려고 도망쳤냐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제 아버지도 그랬을 것 같아요. 저를 고아로, 어머니를 과부로 만들었다면 저도 두고두고 원망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까지 이르도록 얘기하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감춰진 우리 자신의 치부를 타인의 비난으로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 도덕적 우월성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내재돼 있는가도 성찰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 결과 아마도 그같은 불편한 마음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가해자도 과거에는 피해자인 경우가 있고, 또한 피해자 역시 어느 순간 가해자로 입장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설사 우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는 공범적인 관계라고한들 크게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균형 감각이 절실한 시점이다. 비상탈출구 안내와 심폐소생술부터 숙지하기 시작했다는 여교사의 큰 키가 더 커 보였던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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