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성훈(시인·문학평론가) |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 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간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1933~1997)
당신은 어느 가을 해질녘 강가에서 울어 본 적 있는가. 그 강물 속으로 우리의 눈물도 함께 흘러갈 때, 강물은 세상의 모든 '서러운 사랑 이야기'가 한데 모이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노을이 가을 강을 물들이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슬프고 아픈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이것은 절정의 순간에서 나온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불빛'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떨어지는 눈물이 소리 죽인 불빛처럼 가을 강을 붉게 태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품고 사는 당신은 다음 생에서 그 사랑을 만날 수 있음을 바다로 녹아드는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보게 된다.
/권성훈(시인·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