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와 아전인수(我田引水)

최일문

발행일 2014-10-08 제1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905256_466668_5116
▲ 최일문 경동대 행정학과 교수

가정에선 부모와 자녀 사이
기업은 노사·정치권은 여야간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모두 사랑·관심·배려라는
역지사지 기본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원래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유래됐다. 중국 하(夏)나라의 우(禹)임금과 순(舜)임금 시절 농업을 관장했던 후직(后稷)은 태평성대에 살았으며 공자(孔子)의 제자인 안회(顔回)는 난세에 살았으니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던 셈이다.

공자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어질게 행동한 공통점이 있는데 맹자는 이를 인용해 안회도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우임금이나 후직처럼 행동했을 것이며, 우임금과 후직도 난세에 살았다면 안회처럼 행동했을 것(禹稷顔回同道 禹稷顔子易地則皆然)이라며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때 우임금은 물에 빠지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를 잘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고 후직은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굶주린다고 생각했다 하니 여기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한다'는 뜻의 '인익기익(人溺己溺)' '인기기기(人飢己飢)'라는 말이 나왔는데 오늘날 쓰여지는 역지사지의 의미와 상통한다. 게다가 역지사지와 반대의 대립되는 말이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이니 이제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역지사지보다 아전인수의 사례가 더 많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가 행하고 겪게 되는 일상의 일들, 그리고 신문과 TV의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역지사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 같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 간, 기업에서는 노사 간, 정치권에서는 여당과 야당 간에 오히려 아전인수의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인정하기 싫지만 대부분 나와 내 집단의 이기적인 이익을 우선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중요한 우선 '가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서로에게 유익한 결론이 어려울 바에는 갈등과 분쟁을 무릅쓰고라도 굳이 내가 먼저 '양보'하고 '인정'할 의사도 없어 보인다. 한술 더 떠서 상대에게만 역지사지를 요구한다.

아전인수의 기본 입장은 자기중심적 사고다. 반면 역지사지의 기본 입장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이유가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역지사지적 사고는 관심과 사랑이다. 그래서 맹자로부터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역지사지의 사고와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아전인수가 대부분의 경우 비난의 대상이라는 것도 잘 안다. 역지사지는 상생(相生)의 길이요 아전인수는 상극(相剋)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역지사지의 중요성과 실천에 대해 언제고 하고 싶을 때 주장한다. 그리고 사랑과 관심·배려라고 하는 역지사지의 기본 정신이 우리 모두를 위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도 강조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기성세대가 됐을 때 지금과 같이 아전인수가 우세하는 사회 구성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세대와 세대가 이어져 전통을 이루고 역사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 사회에 쌓여 있는 아전인수라는 '적폐(積弊)'를 걷어내는 것은 필자와 같은 선배 세대의 책임이며, 그로부터 모두가 상생하는 역지사지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역할이 후배 세대인 학생들의 몫으로 넘겨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禮人不答反基敬 愛人不親反基仁 治人不治反基智)"고 했다. 역지사지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시각을 달리하면 우임금과 순직이 살았던 태평성대를 한 번 누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최일문 경동대 행정학과 교수


최일문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