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不忘危(안불망위)

이준구

발행일 2014-10-22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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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후 또 터진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잊어선 안될 참사들
편안함 속에서도 항상 위태로움 망각해선 안돼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 "是故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그러므로 군자는 태평할 때에도 위기를 잊지 않고, 순탄할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지고 있을 때에도 혼란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가정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국가 사회 가정에서 안정과 위기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태평한 시기라 하더라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와 어려움에 대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세월호 참사가 난 지 반년이다. 그런데 며칠 전 또 애꿎은 사람 16명이 희생됐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의 아픔을 너무 쉽게 잊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차다. 사고의 원인 속에는 우리가 잠시 기본을 망각했던 것이 자리한다. 27명의 사상자를 낸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는 또다시 사고공화국의 망령이 되살아나게 했다. '내일의 성장은 오늘의 안전에서 시작됩니다'. 사고 나기 불과 사흘 전 광화문 광장에 국무총리, 관련부처 장·차관, 공공기관장 및 관련 시민단체 등 600여 명이 모여 외친 슬로건이다. 정홍원 총리는 이날 "일상생활에서부터 안전을 지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성남 판교사고는 국가안전대진단 행사를 비웃기나 하듯 발생했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와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고 수천년 전부터 고전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말일 뿐이다. 대통령은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답해할 것이다. 세월호에 담겨있던 총체적인 비리의 모습들을 지켜본 게 엊그제다. 끝까지 책임을 따져 묻겠다고 했지만 그 책임 소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 책임도 가려지기 전에 또 판교참사 책임에 대한 공방이 시작됐다. 세월호의 외양간을 고치기도 전에 또 부실한 외양간이 연달아 무너지고 마는 상황이다. 이제 내 몸은 내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결국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금요일이면 서울캠퍼스로 간다. 한남대교를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반포대교를 건넌다. 학기 초엔 오전 7시30분쯤 수원에서 출발했더니 한남대교 위에 차들이 밀린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혹시라도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주부터는 아예 6시에 출발한다. 빨리 다리를 건너려는 욕심에서다. 잇단 사고를 보면서 나의 걱정이 진짜 걱정인지, 기우(杞憂)인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성수대교 붕괴가 떠올라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엘 가도 천장을 쳐다보게 되고 발걸음마저 조심스럽다. 터널 천장의 락볼트도 부실시공했다는 소리에 터널 지나기도 무섭다. 어딜 가나 온통 마음이 조마조마한 건 나뿐일까. 이쯤되면 요즘 사람들이 배타기를 꺼리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겠다.

20년 전 난데 없이 한강다리 상판이 무너져내려 버스와 자동차가 한강에 '풍덩' 빠지고 애꿎은 시민과 학생들 32명이 물에 빠져 죽고 17명이 부상당한 걸 기억해보자. 생각하기조차 싫은 황당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해외토픽 톱뉴스였겠는가. 21일 서울시는 성수대교를 비롯한 전체 한강다리에 대해 안전점검하는 행사를 가졌다. 내년 6월이면 50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937명 부상, 6명이 실종돼 모두 1천445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년이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인명피해로 기록된 치욕의 날이다. 세월호는 물론 모두가 잊어서는 안되는 큰 사고들이다.

기억을 너무 잘하는 것도 병이다. 살면서 고통스러웠거나 힘들었거나 당황스러웠거나 우울했던 기억들을 잊지 않고 생생히 기억한다면 그것 또한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망각(忘却)의 기능이 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잘 기억하고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잘 잊어버리는 것이 건강한 뇌다. 우리가 겪은 대형사고는 잊으면 또 당한다. 安不忘危(안불망위)를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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