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
일본에서 시작된 음식만화는 한국에서도 다양하게 확산됐다. 특히 웹툰에서는 '코알랄라' '역전 야매요리'같은 일상적 음식(요리)만화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들개이빨의 만화 '먹는 존재'는 기존 음식웹툰에서 한 발 더 나간다. 사람을 '먹는 존재'라 선언하는 건 삶과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그런데 심오하지도 않고, 진지하지도 않다. 가볍게 건너가고, '에미넴 랩하듯' 거침없다.
주인공 유양은 '대중적으로 섹스어필하는' 긴 머리카락을 지닌, 야상을 입고, 팔자로 터벅거리며 걸으며, 험한 말을 내뱉는 미혼 직장여성이다. 유양은 자신을 "나같이 무리생활 싫어하고 야심없는 반골기질 게으름뱅이 헐랭이"라고 생각한다. 회식 자리에서 사장이 강권하는 술을 마시고, 한참 막말을 듣다가 안주로 나온 굴을 집어 던지고 회사에서 잘리는 것으로 만화가 시작된다. 자취방에 반찬을 싸온 엄마는 애인이 생겼냐고 묻다가 혼자 사는 것보다 장관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한다. "세끼 밥 먹고 숨 좀 쉬웠을 뿐"인데 통장 잔고의 자릿수가 하나 줄었던 걸 확인하고 친구의 소개로 다시 취직한 회사에서는 1주일만에 잘린다. 그리고 식중독 걸린 아픈 몸을 끌고 우연히 들른 클럽에서, 떡을 먹는 노란 추남 박병을 만나 사귀게 된다.
직장에 다니고, 해고당하고, 새로 직장을 구하고, 다시 해고당하고, 애인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낯설지 않은 평범한 삶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삶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돼 만들어진다. 마치 먹어보기 전까지 맛을 모르는 음식처럼 말이다. '먹는 존재'에서 주인공 유양의 삶은 '브런치 따위에 환장하게 생긴' 친구 예리, 추남이지만 묘하게 끌리는 데가 있는 마성의 남자친구 박병, 주인집 할머니의 소개로 구한 과외 학생 등과 얽히게 된다. 당연하게도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진다. 예를 들어 아무 부담없이 만나려던 박병과의 관계는 난데 없는 부모님과 조우로 급작스럽게 결혼이라는 현실적 난제를 만나며 냉·온탕을 넘나들게 된다.
음식이야기는 결국 사람이야기다. '먹는 존재'에는 매회 특정 음식이 등장한다. 그리고 특정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나온다. 그 상황이 놀랍게도 딱 우리 시대의 풍광이다. 탁월한 비유와 노골적으로 치닫는 비속어들이 막 쓱쓱 그어내어 완성된듯 보이는 그림과 어울리며 2014년 대한민국을 재현한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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