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의 편지-삶, 자유, 그리고 선택

이백철

발행일 2014-11-0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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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
나의 쾌락이 고통으로
자유가 속박으로
행복이 불행으로
타인에게 이어질 수 있다는
단순한 경험을
내면화하지 못한 것이라고…

최근 사형수 A로부터 소년원 원생들에게 전하는 애절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A는 지울 수 없는 큰 죄과로 사형판결을 받아 10여년째 구치소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다. 그는 사건발생 직후 중국으로의 밀항을 계획했으나 망망대해에서 바다 속에 생매장이 될 것이 두려워서 포기했고, 도주과정에서도 두 차례의 자살을 시도했으나 역시 모두 실패했다. 첫 번째는 수면제 100여 알을 털어 넣었으나 급작스러운 위경련으로 토한 바람에 이루지 못했고, 두 번째는 빌딩에서 투신을 목적으로 20층까지 올랐으나 옥상철문이 잠겨 뛰어내리지 못해 실패했다. 지난 세월도 생의 마감을 기다리는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사형을 미집행하는 국가정책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종교적으로 귀의한 삶을 보내고 있다.

A는 한 인간이 생명체로 탄생하면서 얻어지는 삶과 자유는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것들을 향유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 조건은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며, 올바른 선택을 통해서만이 주어진 삶과 자유를 진정으로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는 착한 중독과 나쁜 중독이 있는데, 물욕과 쾌락을 탐닉하는 나쁜 중독을 선택했으며 폭력적인 삶을 살다가 급기야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고, 지금은 자신의 생명과 자유를 모두 타인의 결정에 의존해야만 하는 피동체로 변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삶과 자유가 언젠가 그에게도 조건이 없이 거저 주어진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찌하여 불안·절망·악몽·불면, 그리고 그리움에 휩싸여 상상 속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를 자책하며 회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문득 교도소 벽에 걸린 시계가 멈춰있는 것을 발견하고, 고장난 시계일지라도 하루에 오전과 오후 두 번은 제 역할은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기약을 알 수 없는 여생이지만, 남아있는 몇 줌의 착한 선택을 찾아 무던히도 고뇌하고 투쟁해 왔으며, 가까운 미래가 될지라도 그 때까지 착한 선택에 중독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삶·자유, 그리고 선택." A가 필자에게 매우 진지하고 절실하게 던진 단어들이다. 선택을 잘못하면 자유를 뺏길 것이고, 더 나아가 삶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 세상에서 선택을 진지하게 연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A와 그 동료들만이 아닐 것이다. 빈곤·박탈감·피학대, 그리고 애정결핍을 경험한 뭇 소년들이 물질만능을 희구하는 자극적인 경쟁사회 속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특히 교정시설에 갇혀있는 소년들이 과연 절박하고 자극적이었던 당시 상황 속에서 희망의 길과 타락의 길을 구별해낼 수 있었을까? 더구나 언젠가 소년원까지 경험한 이들이 초대되지 않은 손님으로 옛 환경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사형수 A는 그들이 나쁜 선택을 한 이유는, 진지한 사고를 통해 선택하는 학습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선택의 결과에 따르는 미래의 희열과 고통을, 행동으로 옮겨지기 이전에, 생각과 사고 속에서 체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자유는 속박이 있기에, 쾌락은 고통이, 그리고 행복은 불행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은 항상 상대적이어서 나의 쾌락이 타인의 고통으로, 나의 자유가 타인의 속박으로, 나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단순한 경험을 내면화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래도 제 생명이 연명되고 있기 때문에 수형자 사회에서나마 착한 선택을 할 작은 자유가 주어진 것이겠지요? 제 뜻이 교수님을 통해 소년원 원생들에게 전해진다면, 없었어야 할 작은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요? 돌이켜 보면, 저는 지금처럼 선택을 진지하게 연습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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