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식인(食人)

김준혁

발행일 2014-11-1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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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임진왜란 발생 직후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몸을 피했다. 개성마저 위태롭다고 생각한 그는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을 갔고 아예 압록강을 넘어 요동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군왕이 나라를 버리면 안된다는 신하들의 절규에 선조는 차마 요동으로 가지 못하고 대신 명나라 군대의 지원을 요청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명나라의 국력 역시 최악의 수준이었다. 곳곳에서 민란(民亂)이 일어났고, 여진족 중심의 만주지역에서는 누루하치가 여러 부락을 서서히 통일해 가면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명나라는 조선에 파병군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것은 일본군이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의 국경인 산해관까지 이르게 되면 본격적인 전쟁이 자신들의 땅에서 벌어질 텐데, 자국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남의 나라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나라는 마치 조선에 큰 은혜를 주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참전을 결정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지 7개월째 되는 1592년 11월10일 의주의 용만관에서 선조는 명나라 사신 정문빈(鄭文彬)을 접견한다. 정문빈은 그 자리에서 "조선은 늘 명나라에 공순한 국가이기에 황제가 7만명의 파병군을 보내주기로 했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러면서 "명군이 압록강을 넘어 조선에 당도하는 즉시 모든 식량과 물자는 조선이 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조는 어떠한 이의도 달지 않고 모두 수용하면서 '전시작전권'까지 내주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명군 5만명에 대한 1개월 분량의 식량밖에 없었다. 결국 명군의 식량마련을 위해 백성들에게 강제로 식량을 걷기 시작했다. 조선 백성들은 일본군에게 수탈당하고 명나라 군대때문에 또 다시 수탈당했던 것이다. 더구나 명군은 조선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니면서 여인들을 강간하고 각종 재물을 빼앗아갔다. 이후 농사지을 땅은 황폐화되고 이듬해 기근까지 겹쳐 백성들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러자 마침내 백성들 사이에서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1594년 1월,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져 있던 한 걸인의 사체에서 살을 떼어내 먹는 일이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정말 엽기적인 일이었겠지만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는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사체의 인육도 모자라 심지어 산 사람을 도살(屠殺)하고 내장과 골수까지 먹는 일도 일어났다. 국왕과 지도층의 무능이 평화로웠던 백성들을 살육의 주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조선은 명나라 참전으로 일본군을 몰아내는데 도움을 받았지만 명군 참전으로 인한 물적·정신적 피해는 너무도 컸다. 그 결과, 조선의 백성들은 침략군인 일본군보다 원군인 명나라 군대를 더 증오했던 것이다.

최근 미국과의 협상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가 결정됐다. 1년에 북한의 국방비보다 14배가 넘는 39조6천500억원이란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우리 군대가 스스로의 힘으로 북한을 이길 수 없으니 미국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내린 결정이다. 그 대가로 10조원에 이르는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대명의리론(大明義理論)을 이야기하면서 전시작전권을 포기하고 발생했던 수많은 백성들의 고통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정부와 여당이 이번 결정을 바꾸지 못한다면 살을 깎는 국방개혁을 통해 전시작전권을 속히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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