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할머니

윤재웅

발행일 2014-11-14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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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3세대가 함께 다니는 학교 '새로운 실험'
어르신·아이 사이 배려·사랑·존경 샘솟아
봉암초 사례 흥미 넘어 진지한 연구 필요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봉암초등학교라는 곳이 있다. 전교생이 4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다. 이 학교 학생중 70대 할머니가 두 분 있는데 올해 1학년 신입생이다. 할머니들은 왜 칠순을 넘겨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을까. 못다 배운 한글이라도 익혀 까막눈이라도 면해 보고 싶었던 걸까. 최석진 교장은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평등과 교육정의, 세대갈등과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학교를 과감하게 디자인하는 중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다니는 학교, 3세대가 같이 다니면서 문화를 공유하는 학교, 가방은 큰아들이 사주고 조카며느리는 크레파스를 사주는 행복한 공동체 마을,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도 그 자녀와 함께 다니게 되는 미래교육의 희망 제작소…. 한국사회의 새로운 교육실험이 시골 작은 마을에서 시도되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아침 등교후 정규 교육과정을 익히고 손자같은 동료 학생들과 점심도 하면서 오후 4시40분까지 학교에 꼬박 남아 학습한다. 칠순 할머니가 담임선생님께 얼마나 공손하게 인사하는지 동료학생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 법도를 따른다. 김치담그는 방법이라든지 지혜로운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성교육도 저절로 된다.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할머니들이 학업진도에 다소 어려움을 겪으면 코흘리개 꼬맹이 학생들이 '할머니 제가 읽어 드릴게요' '할머니, 제가 써드릴게요'라며 도움을 주고 받는다. 학습자들 사이에 저절로 이뤄지는 동료애다.

보다 극적인 장면도 있다. 전주에 있는 1학년 손자가 보내온 편지를 읽는 할머니가 그렇다. 도시의 손자는 시골의 문맹 할머니가 이제는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좋은 책 많이 읽으셔야 해요'라며 제법 어른스럽게 권유한다. 편지읽는 할머니 입에서 동급생 손자 목소리가 살아나온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이보다 따뜻한 가족애가 있을 수 없다. 배려와 사랑과 존경의 선의(善意)가 시골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안에 잔잔히 울린다.

봉암초등학교 사례는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노년인구, 줄어드는 학령아동들, 평생학습시대의 도래, 문맹해소의 현실적 대안, 학교와 지역사회의 상생협력 방안…. 전국 어디에서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이 사례는 단순한 흥미 차원을 넘어 보다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과 같은 표심유혹 정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삶의 질 개선이다. 그 개선 내용속에는 교육과 문화에 대한 욕구도 들어 있다. 평생학습과 교육격차해소 방안이 투자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삶의 질 개선이 예산배분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좋은 뜻'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 역시 중요하다.

미국의 산간벽지에 명문대 졸업생들이 교사로 참여해 2년간 봉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름하여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 TFA)'다. 1990년 프린스턴대학교 졸업 예정자인 22살 여대생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사업은 지난 25년동안 4만명의 봉사자들을 훈련시켰고 한 해 1만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교육여건이 부족한 곳에 교사를 파견하자는 대담한 아이디어가 그 모태가 됐다. 물론 이 프로그램 운영의 예산은 '엔젤 펀드'였다. 좋은 뜻에 후원하는 기부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

봉암초등학교를 어떻게 하면 미래 희망학교로 만들 수 있을까. 전국의 수많은 사례들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기대하느니 '선의'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젊은이들의 기개를 기대하는 게 빠를지 모르겠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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