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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대장장이 눈과 손' 없이는 담금질 제대로 안돼
힘겨운 망치질 없이도 '그럴듯한 연장' 안나와
'늙어가는 대장간' 당국이 나서서 보호해야


요 며칠 사이 몇 차례나 대장간에 갈 일이 있었다. 40대 후반이 되도록 대장간은 처음이었다. 단원 김홍도나 기산 김준근 등 조선 후기 풍속화가들이 남긴 그림에서나 옛 대장간 모습을 보아 온 터였고, 요새 대장간 풍경은 간혹 보도 사진에서나 보았을 뿐이었다. 대장간에 가기 전까지는 대장간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는 듯 여겼다. 어릴 때 농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보습, 곡괭이, 삽, 호미, 낫, 쇠스랑 등 대장간에서 만드는 농기구와 친숙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현장에서 확인한 실제 대장간은 책상머리 생각과는 달랐다. 어릴 때 솔가지를 쳐 땔나무 하던 육철낫을 만드는 광경도 보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얼마나 기본에 취약한지를 말이다.

대장간은 우리 사회의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산업 현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공장보다도 활기가 넘쳐야 하고 열기가 뜨거워야 한다. 하지만 직접 가 본 '공업 도시 인천'의 대장간은 활력을 잃었고, 싸늘하기만 했다. 공장이 많고, 어업 인구가 많고, 각종 선박들이 즐비하고, 농민까지 있는, 그래서 어느 도시보다도 대장간이 붐벼야 하는 인천의 일명 철공소 골목에서 영업 중인 대장간은 네 곳에 불과했다. 또한 네 곳 모두 1인 기업이었다. 대장장이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나마 모두 노인들이었다. 대장간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했다. 대장간은 쇳덩이를 불에 달구어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곳이다. 불을 다뤄야 하고, 쇠를 두드리고 잘라야 하는 곳이다. 힘이 필요한 곳이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없었다. 인천 대장간의 미래는 10년을 내다보기 어렵게 되었다.



대장간을 찾는 손님은 그래도 꾸준했다. 별의별 물건을 요구하는 사람도 많다. 이 손님들도 이제 얼마 후면 다 중국 대장장이들에게 일을 맡겨야 할지 모른다. 대장간의 물건도 벌써부터 중국산이 지배하고 있다. 대량 생산이 필요한 물건의 경우 견본만 우리 대장간에 맡긴 뒤 그것을 중국에 보내 나머지를 주문하는 식이라고 한다. 섬에서 굴을 따는 데 쓰는 도구인 조새조차도 중국에서 만든 게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중국에 있는 대장장이들이 한국의 갯벌에서 쓰이는 도구를 만들고 있는 세상이다. 아무리 경제논리가 앞선다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한 대장간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런데 그 대장간이 우리 사회에서 늙어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대장간에서 만드는 물건과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물건은 질적으로 다르다. 공장에서 할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이다. 쇠의 특성에 따라 달리해야 하는 담금질이라는 것은 대장장이의 눈과 손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쓰는 물건이야 담금질이 보통으로 돼 있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특수한 용도의 도구일 경우 그에 걸맞은 담금질이 꼭 필요하다. 대장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 특수한 도구를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대장간 보호는 이제 개인에게 맡겨서 될 일은 아닌 듯싶다. 당국이 나서야 할 만큼 급박하고 절실한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이 대장간을 찾는다면 정책도 뒤따를 것이다. 과정의 중요함을 함께 이야기하고픈 아들딸이 있다면 대장간에 가 보자. 예를 들어, 어린 아들딸이 가수가 되기까지의 고통은 염두에 두지 않고 무대 위의 화려함에만 빠져 가수가 되겠다고 야단이라면 토론할 장소로 대장간이 제격일 듯하다. 달궈지지 않고, 망치로 맞지 않고 그럴듯하게 나오는 연장이 없듯 힘겨운 과정 없이 달콤한 결과는 없다는 것을 대장간은 이야기해 줄 것이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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