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범죄에 대한 단상(斷想)

이백철

발행일 2014-12-0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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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철
가정과 학교·종교단체는
건전하게 육성되고
존중받는 대상이 돼야 하며
개개인은 단죄·계도 보다는
공범일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반성과 회개 하는 자세 필요


최근 The Economist지는 유명 미래 학자들도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으로 지난 10여년간 주요 선진 국가에서 살인·강도·차량절도·마약사용과 같은 전통적인 범죄가 급격한 하강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이런 급격한 감소현상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독 증가하고 있는 범죄유형 중의 하나가 성범죄라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어린 10대 청소년에서부터 사회 고위지도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만연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절대적인 수치가 실제로 증가한 것인지, 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새로워진 결과인지는 확정할 수 없으나 전반적인 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폭력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고 미래의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범죄가 어떤 원인체계로 이뤄져 있으며 어떻게 반복되는가의 순환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개인적 차원은 물론 사회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범죄의 발생은 일반적으로 4단계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 번째 단계는 근원이 되는 다양한 원인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혼돈된 가족체계에서의 성장, 경직된 가부장제, 성적·신체적 피학대 경험, 알코올·약물의 과용, 음란매체에의 과다노출, 성교육의 부재, 타고난 기질적 성향 등과 같은 개인적·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원인체계가 실제 행위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상황적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둘째는 윤리적 양심이 제어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호젓한 장소에서 보호자가 없는 아동과 마주하거나 늦은 밤 시간에 과음한 여성과 맞닥뜨려지는 등과 같은 상황적 기회가 포착돼야 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쾌락을 향한 공격적 욕구가 윤리적 양심과 같은 내면적 억제능력을 훨씬 능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범죄사각지대에 대한 대처의 미흡과 가정이나 학교·종교 부문에서 익혀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이 내면화되지 못한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피해자 측의 능력과 태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예컨대, 피해자가 방어할 능력이 결여됐거나 저항의지를 상실했을 경우, 그리고 사전에 대처정보의 숙지와 대비에 소홀했다면, 가해자에 의해 제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여러 단계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가해자는 법적 제재의 두려움과 윤리적 양심을 초월해 자극적인 쾌락을 즐기게 되며 이는 바로 자기 합리화 단계를 거쳐 다시 반복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게 된다.

성폭력 범죄가 수없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완전범죄로 끝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요건들이 충족돼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해자 측면, 피해자 측면 혹은 사회 정책적 측면에서의 어떤 조치에 의해서든 어느 한 단계에서만이라도 차단될 수 있다면 완전범죄는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성폭력범에 대한 형벌의 강화, CCTV 설치의 확대, 전자발찌제도 및 화학적 거세제도의 시행, 성폭력 범죄 예방교육 및 치료 등 다양한 제도와 정책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기관들이 전시적 행정의 차원을 넘어 문제의 본질적 원인체계와 단계별 순환과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해당하는 각각의 제도나 프로그램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뿌리가 되는 가정과 학교와 종교단체가 건전하게 육성되고 존중받는 대상이 돼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하며, 개인적 차원에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단죄(斷罪)하거나 계도(啓導)하는 입장에서보다는 각각이 공범(共犯)일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가짐으로 반성과 회개의 시간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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