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상, 백구번지의 기억

이용식

발행일 2014-12-1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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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식 인천발전연구원 부원장
대규모 인사 앞둔 인천시
스산함 속에 스며드는
조직의 쓸쓸함과
개인의 소외감을 없애거나
최소한 줄이는게 리더들의
엄중한 책무이자 사명이다


전도관 밑 숭의동 백구번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제게 겨울에 대한 생각은 그곳에서의 기억과 자주 연관됩니다. 겨울 초입에 들어서면 제 머리는 자동적으로 그 시절 백구번지의 기억을 들춰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게 그곳의 겨울은 매우 추웠습니다. 전도관 쪽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웠고, 철도길 옆 황량한 길거리에서 몰려오는 유쾌하지 않은 그 무엇은 제 몸이 느끼는 온도를 더욱 낮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게 겨울은 춥고 유쾌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추운 겨울과 함께 시작되는 겨울방학은 또래 아이들에겐 그래도 노는 즐거움을 주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백구번지 우리 동네 아이들은 겨우내 철도 옆 노천 하수도에서 틈만 나면 썰매를 탔습니다. 철로 옆 상가와 주택에서 쏟아져 나온 하수가 얼어서 만들어진 얼음판장이었으니 당연히 빙질(?)이 좋을 리 만무했습니다. 자주 자빠졌고, 그래서 집에 돌아와 온기에 젖은 옷이 마를라치면 시궁창 썩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저는 할머니로부터 야단맞기 일쑤였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가끔씩 원정 썰매를 타러 가기도 했습니다. 멀리 지금의 서구 한 편에 해당되는 개건너에 갔던 것이죠. 그곳엔 논이 얼어 제법 넓은 빙판이 형성되어 있었고, 우리들은 신나게 놀면서 각자 썰매타기 기술을 맘껏 뽐냈습니다. 저는 외 날 썰매를 만들고 타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또래의 부러움을 샀고 덩달아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놀다 서둘러 지친 몸을 이끌고 백구번지로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고행(?)이었습니다. 애들 걸음으로는 두어 시간을 걸어야 올 수 있는 거리였는데, 더 큰 고난은 당시 선인학교 재단이 몰려 있던 큰 언덕을 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지쳐 불을 피워 놓고 잠시 쉬다가 산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제게 백구번지의 겨울이 주는 더 생생한 기억은 우리 동네에 다다라 또래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갈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집에 가까이 갈수록 느껴지는 주변의 스산함과 제 마음의 쓸쓸함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제 집에 다 왔다는 안도감이나 허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그 또래 아이가 가질 수 있었던 마음의 부담과 압박감이 먼저 몰려왔었죠. 그렇게 제 어린 시절은 백구번지의 겨울 기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새삼 백구번지의 겨울 기억을 상기하게 된 건 요즘의 세태와 주변의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한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도 그렇고 유난히 추울 것이란 일기 예보도 저의 이런 기억 되살리기에 한 몫 했을 테지요. 실감하는 추위 속에서 요즘 특히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주 확인하게 되는 쓸쓸함이 합쳐졌을 겁니다.

인천은 지금 인사철입니다. 민간 부문에서도 시기적으로 그렇지만 인천시는 특히 대규모 내외 인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공직을 둘러싼 대규모 자리 이동과 승진이 이루어질 것이고, 동시에 외곽 조직의 인사교체가 점쳐지고 있습니다. 그 규모가 매우 클 것이란 점은 적재적소 배치와 능력 인사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일부 대상자들에게 소외감과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게 합니다. 춥고 스산한 겨울날씨에 사람들에게 심적으로 큰 상처를 남기는 쓸쓸함을 안길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드는 것이죠.

백구번지 그 겨울의 쓸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천오백 여 년 전에도 공자가 군자(정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仁)과 예(禮)를 왜 그렇게 강조했는지를, 그래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쯤은 되새겨 보라 강조하고 싶습니다. 스산함 속에 스며드는 조직의 쓸쓸함과 개인의 소외감을 아예 없애거나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조직 리더들의 엄중한 책무(仁)이자 최소한의 사명(禮)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이용식 인천발전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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