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47]'강화도 시인' 함민복

수평으로 살라는 갯벌의 가르침
자연에서 배우고 글밭을 일구다

목동훈 기자

발행일 2014-12-1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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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강화도 남단 동막해변. 바닷물이 물러서면 드넓은 갯벌이 다가선다. 바닷물이 다가서면 갯벌은 그곳에 숨는다. 시인 함민복은 갯벌이 '물나무' 같다고 했다. 뻘에 핏줄처럼 퍼져 있는 물길들. 산 위에서 보는 물길들은 물의 뿌리란 생각이 든다. 구불구불 영락없이 나무뿌리처럼 생겼다. 그 실뿌리들은 바다 쪽으로 커가면서 가닥과 가닥을 합쳐 점점 굵은 뿌리가 된다. 그러다가 큰 물줄기가 펼쳐지고 그 줄기 위에 푸른 '물나무'가 드넓다(산문집 '미안한 마음' 중에서). /임순석기자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함민복 시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中

함 시인 "강화도는 도서관이자 창작실" 20년 살며 문학적 소재 얻어
서정·감성적 시어 잔잔한 울림… 개발압력·구제역 아픔 표출하기도
관광객 유치 vs 경관 보전 딜레마 속 '원주민과 외지인 잇는' 다리 역할


갯벌은 말랑말랑하다. 갯벌은 높낮이가 없이 평평하다. 드넓게 펼쳐진 갯벌, 하늘과 바다, 모두가 수평이다. 수직은 없다. 자꾸만 높아지는 빌딩이며, 내 것만을 돋보이게 하려는 네온사인이며 나를 높이고 드러내는 것이 갯벌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곳에 서면 높이 오르려 하는 인간의 수직 상승 욕망을 이해할 수 없다. 갯벌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인의 자궁과 같이 고귀함으로 충만한 곳이다. 지난 12일 오후 3시 강화도 남단 갯벌에 섰다. 갯벌이 말을 걸어왔다.

강화도에서 20년 가까이 살며 갯벌의 소중함과 가르침을 글로 쓰는 시인이 있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53)이다. 그는 강화도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시어로 노래해 우리 가슴속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갯벌, 갯벌 속 어민, 구불구불 골목길 등 강화도의 모든 게 그의 문학적 토대다.

강화군 선원면 한 찻집에서 만난 함민복 시인은 "강화도는 많은 생각을 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이라며 "도서관이자 창작실이다. 글 소재를 주고 삶을 가르쳐 준 스승과 같은 곳"이라고 했다.

또 "강화군 동막리에 살면서 문명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며 "층을 만들고 수직화되는 것의 대척점이 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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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막해변에는 함민복의 시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가 새겨진 돌판이 있다. 강화 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2011년에 만든 것이다. 시비를 세우지 않고, 평평한 원형 돌판에 시를 새긴 이유가 있다. 함민복은 돌에 글 새기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 '돌에'를 쓴 적이 있다. 또 여러 편의 시에서 문명화의 상징인 '수직'을 비판했다. 이런 연유로 시비 제작을 극구 사양했지만, 강화 라이온스클럽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타협점을 찾은 것이 바로 '수평한 시비'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쉽게 만들 것은/아무것도 없다는/물컹물컹한 말씀이다/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소금물 다시 잡으며/반죽을 개고 또 개는/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전문)

강화도 남단 동막해변 인근에는 함민복이 강화도에 처음 자리잡아 13년 정도 산 동네가 있다. 그는 동막해변 갯벌에 관한 시와 산문을 여러 편 썼다. 동막해변 앞으로 갯벌이 드넓다. 그 너머로 장봉도, 신도, 시도, 모도 등 영종도의 '형제 섬'들이 가깝다.

겨울 갯벌은 조용하다. 농게, 칠게, 방게, 망둥이로 북적거리던 갯벌이 겨울잠에 들었나 보다.

인천지역 갯벌 면적은 709.6㎢인데 이 중 34%가 넘는 243.6㎢가 강화군에 속한다. 강화 남단을 중심으로 한 갯벌과 저어새 번식지는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돼 있다. 갯벌은 다양한 기능을 한다.

갯벌은 어패류 등 연안 해양생물의 산란장이자 염생식물의 서식지다. 저어새 등 철새들의 놀이터이자 번식장소이면서,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도 한다. 사람도 갯벌에 붙어 산다.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집들이 다 구멍이네/구멍에서 태어난 물들/모여 만든 집들도 다 구멍이네/딱딱한 모시조개 구멍 옆 게 구멍 낙지 구멍/갯지렁이 구멍 그 옆에도 또 구멍구멍구멍/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은 놈 하나 없네('뻘 밭' 전문)

강화도에서 잡히는 해산물은 젓새우, 숭어, 넙치, 우럭, 농어, 바지락, 모시조개, 백합, 굴, 낙지 등 다양하다. 장어는 더리미항과 초지항 등 일부 지역에서 잡히고, 석모도와 볼음도 해역에서는 꽃게와 민꽃게가 잡힌다.

신상범(66) 흥왕어촌계장은 "강화 남단에서는 망둥이, 젓새우, 숭어, 농어, 꽃게, 조개가 잘 잡힌다"며 "겨울에는 주로 굴을 따는데, 한강의 민물기 때문에 얼음이 나면 배가 못 나간다"고 했다.

강화도는 저어새 등 철새들이 머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칠게, 갯지렁이, 조개, 물고기 등 먹이가 풍부하다. 또 갯벌, 논, 숲 등 철새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도 많다.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뒷부리도요, 노랑부리백로, 오리, 기러기 들의 철새가 강화 갯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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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큰 새들의 날개는 산을 닮았다/기러기가 날아올 때 선(線)으로 된 산도 함께 날아온다/갈매기가 머리 위를 지날 때 면(面)으로 된 산도 지난다//산이 운다/울며 날아가는 산(山)아!//사람들이 서로 껴안을 때/사람들의 팔도 산 모양인 것 너희들도 보았느냐('산이 난다' 전문)

강화도는 섬이지만 농업이 발달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집은 9천세대가 넘는 반면 어가는 300세대가 채 안 된다. 어선 수는 지난해 420척에서 올해 400척으로 줄었다. 배 규모도 작다. 400척 가운데 399척은 10t 미만의 소형 어선이다. 강화도 어민들은 과거보다 어종과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고 말한다.

어민들은 영종도에 공항이 들어서면서 물 흐름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데, 기후변화와 남획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옛날에 아버지는 숭어가 많이 잡혀/일꾼 얻어 밤새 지게로 져 날랐다는데 아무 물때나/물이 빠져 그물만 나면 고기가 멍석처럼 많이 잡혀/질 수 있는 데까지 아주, 한 지게 잔뜩 짊어지고/(…중략…)/뻘길 십 리 길 가물가물 멀기는 멀지 아느껴 힘들더라도/나도 그렇게 숭어 타작 좀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시다('어민 후계자 함현수' 중에서)

'서해호' 선장 함현수(44)씨는 "날씨 등에 따라 매년 상황이 바뀌는데, 어쨌든 전반적으로 바다의 씨가 마른 것은 사실"이라며 "아버지 때는 꽃게가 발에 밟힐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요즘엔 민어 보기가 힘들고 망둥이도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바다와 갯벌만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강화도 남단에는 펜션이 즐비하다. 조망이 좋은 자리는 어김없이 펜션이 차지하고 있다. 함민복 시인이 살던 동막리 양철 지붕 집 자리에도 펜션이 들어섰다. 관광객 유치와 자연 경관 보전을 놓고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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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8월 개통된 초지대교. 1995년 민자유치사업(20년간 통행료 징수 후 기부채납)으로 추진되다 시공사 경영난으로 중단됐다. 1999년 인천시가 공사를 맡아 사업을 완료했다. 함민복 시인은 초지대교를 바라보며 연작시 '다리의 사랑'을 썼다.
함민복은 김포신도시 조성에 따른 개발 압력이 강화도까지 미칠 것을 우려하며 시 한 편을 썼다.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중략…)//이제 농촌이 도시를 베끼리라/아파트 논이 생겨/엘리베이터 타고 고층 논을 오르내리게 되리라/바다가 층층이 나누어지리라/그렇게 수평이 수직을 모방하게 되는 날/온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탑이 되고 말리라//김포평야 물 괸 논에 아파트 그림자 빼곡하다('김포평야' 중에서)

강화 축산 농가들은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을 졸이게 된다. 강화도는 2010년 두 차례의 '구제역 파동'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강화도에선 그해 4~6월 돼지 2만3천437마리, 소 7천630마리 등 3만1천345마리를 살처분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돼지 9천149마리, 소 2천56마리 등 총 1만1천399마리를 땅에 묻어야 했다.

구제역 여파로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식당과 숙박업소 등도 영업에 타격을 입었다. 애지중지 정성을 다해 키운 가축을 땅속에 묻어야 하는 축산 농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침출수, 아, 썩어 피 썩어서도/지상으로 오르지 말란 말인가//울음 무덤 위에/긴 장마('구제역 이후' 전문)

함민복은 "구제역 파동 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가축이 매몰됐다"며 "인간이 생명을 함부로 해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람들은 침출수로 인한 오염이나 걱정하고 있더라. 생명체에 대한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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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수도로 가는 관문이자 군사적 요충지 구실을 했다. 고려는 1232년 7월 염하(鹽河)를 건너 강화도로 천도했고, 그 뒤로 강화는 39년간이나 고려 왕도 구실을 했다.

초지대교 인근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19세기 외세의 침략이 시작된 곳이다. 어업보다 농업이 발달한 이유도 고려·조선시대 식량 확보 차원에서 간척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강화도와 뭍은 강화대교(1997년 개통)와 초지대교(2002년 개통)로 연결된다. 1970년 개통돼 소임을 다한 옛 강화대교는 자전거와 사람이 왕래할 수 있는 '강화 역사체험 누리길'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교통이 편리해진 만큼 외지인들이 강화로 많이 들어왔다.

함민복은 초지대교를 바라다보며 연작시 '다리의 사랑'을 썼다.

서로 자기 쪽으로 당기는 힘이 아니라/서로 연결하려는 의지로 다리는 존재한다('다리의 사랑1' 전문)


함민복은 "근래에는 외부에서 오신 분이 많다. 원주민과 외지인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며 "대립할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 함께할 수 있는 장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강화도에서 20년 가까이 산 함민복은 어느덧 원주민과 외지인을 잇는 다리가 돼 있었다.

/글 = 목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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