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19]구리 동구릉

묵직한 맥 '천연 요새'
그곳에… 왕이 잠들다

박상일 기자

발행일 2014-12-2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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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릉의 첫 주인 건원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안장된 건원릉은 동구릉 9개 능 중에서도 가장 묵직한 맥을 타고 주위의 산과 나무들이 겹겹이 둘러싼 곳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왕조 9기의 능에 7명의 왕·10명의 왕비 안장
일자문성·좌청룡 우백호 겹겹이 호위
단정하고 예쁜 산 명당으로 손색없어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이
한곳에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들 중에서도
백미 중 백미로 꼽히는 곳.
구리 동구릉(東九陵)을
찾아가는 날,
새벽까지 소복하게 눈이 내렸다. 고속도로와 구리 시내 큰길에는 밤새 뿌려댄 염화칼슘으로
벌써 눈이 흔적도 없이 녹았다. 하지만 동구릉은
주차장부터 하얀 눈이 녹지 않고 고스란히 쌓여
손님들을 반긴다.
아름다운 겨울 풍경으로 소문난 왕릉의 설경(雪景)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향한다.

구리 동구릉은 남북한을 합쳐 총 42기가 남아있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 중 9기가 모여있는 곳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健元陵)부터 조선 제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및 계비 효정왕후의 능인 경릉(景陵)까지 시대별로 들어선 9기의 능에는 모두 합쳐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다.

전체 면적만 196만9천여㎡에 달하는 동구릉은 1408년 태조 이성계가 건원릉에 가장 먼저 안장된 후, 1904년 경릉 헌종의 곁에 효정왕후가 마지막으로 안장될 때까지 장장 500년의 세월을 두고 왕과 왕비가 모셔졌다. 그것만으로도 동구릉은 조선 왕실에서 가장 사랑 받은 명당으로 손꼽힐 만하다.

정문 매표소와 역사문화관을 지나 하얀 눈길을 밟으며 조금 걸어가니 능역의 입구를 알리는 홍살문이 가장 먼저 반긴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던 커다란 소나무들은 가지마다 흰 눈이 묵직하게 쌓였다. 

키작은 관목들과 잎이 떨어진 활엽수들의 가지에는 눈부신 눈꽃이 피었다. 홍살문 안쪽으로 들어서니 겹겹이 둘러싼 구릉들 덕분에 살을 에는 듯하던 바람도 한결 잦아든다. 한바탕 눈이 내린 후 새파랗게 갠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제례 준비를 하던 재실(齋室)을 지나자 가장 먼저 수릉(綏陵)이 위용을 드러낸다. 수릉은 헌종의 부친으로 22세에 요절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후에 추존된 문조(文祖·1809~1830)와 신정황후의 능이다. 높고 힘차지는 않지만 선명하게 뻗은 맥을 타고 안정되게 자리를 잡았다.

능침(봉분) 부근에 올라 주변의 산세를 둘러보고 싶었으나, 눈이 적지않게 쌓인데다가 정자각 위쪽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어서 호기심을 누르며 아래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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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릉을 지키는 산' 영조와 정순왕후가 안장된 원릉 뒤편에 솟은 영상사.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인의 묘들이 한눈에 조산과 주산, 좌청룡, 우백호 등등을 따질 수 있는 것과 달리 왕릉들은 훨씬 규모가 커서 좀 다르게 봐야 해요. 동구릉은 들어오면서 금세 느껴지듯이 일자문성을 이루는 구릉들이 겹겹이 둘러있고, 그 안쪽에 사방으로 맥이 뻗어있어 마치 천연의 요새 안에 자리해 있는 모양이지요. 좌청룡·우백호가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에워싼 가운데 묵직한 맥을 타고 모셨으니, 하나하나가 명당으로 손색이 없어요."

흰 눈이 눈부시게 쌓인 수릉을 잠시 둘러본 취재팀은 서둘러 건원릉쪽으로 이동했다. 동구릉의 중심선을 따라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건원릉은 1408년 5월 24일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아들 태종이 여러곳의 명당을 알아보고 비교한 끝에 선택한 곳이다.

태조는 생전에 계비인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했으나, 태종은 부왕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이곳에 태조를 모셨다. 태조와 신덕왕후의 각별했던 애정만큼이나 신덕왕후와 불편한 관계였던 태종은 곧이어 눈앞의 가시 같던 정릉을 도성 밖으로 옮겨버렸다.

부왕을 정릉에 안장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니, 결국 건원릉은 태종이 조선의 미래를 위해 부왕을 모신 명당이기도 하지만, 신덕왕후와 부왕에 대한 복수의 산물이기도 한 셈이다.

이런 복잡한 역사를 배경으로 서 있는 건원릉은 능침에 잔디 대신 억새풀이 자라고 있는 '특별한' 능으로도 유명한데,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한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벌써 600년이 넘은 옛 이야기를 품은 건원릉은 태조의 명성 만큼이나 당당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한낮의 겨울 햇살이 능침 주변을 따뜻하게 비추며 한겨울 추위를 잊게 한다. 수릉보다 훨씬 묵직하게 뻗은 맥을 타고 조성된 건원릉은 마치 수천명의 군사들이 에워싼듯 낮은 구릉들이 일자문성을 이루며 겹겹이 호위하고 있다.

내청룡 격인 왼쪽의 가장 가까운 구릉은 조금 앞쪽에서 묵직하게 모여 영상사를 이뤘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길이 홍살문 앞을 잔잔히 흐른다.

"이것저것 따질 필요도 없이 훌륭한 곳이에요. 주변의 산들을 보아도 어느 하나 못생기거나 험한 게 없고 부드럽고 모양이 좋아요. 참으로 더없이 좋은 곳이네요."

조광 선생의 감탄을 들으며 건원릉 옆 목릉(穆陵)으로 향했다. 목릉은 조선 제14대 선조(1552~1608)와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를 모신 능이다. 건원릉보다 더 뒤쪽으로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다. 

동구릉의 능들은 대부분 하나의 곡장(능침을 둘러싼 담장) 안에 왕과 왕비의 능침을 나란히 모셨는데, 목릉과 현릉(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은 왕과 왕비의 능이 별도로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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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눈에 덮인 동구릉' 동구릉 진입로와 수목들에 쌓인 흰눈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 덕분에 목릉은 건원릉에 비해 훨씬 널찍하게 앞이 트여 시원스럽다. 좌우로 빽빽하게 청룡·백호가 에워싼 건원릉보다 좌우도 여유가 있다.

"조선의 왕릉들은 좋은 명당을 찾아 선택한데다가 건축양식과 부속건물은 물론 각종 석물들까지 엄격한 규칙을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양이나 느낌이 비슷해요. 능선과 숲이 호위하듯 둘러싸여 있으니, 전체적인 모양을 보려면 위성사진이나 지형도를 참고하는 곳도 좋은 방법이지요. 어쨌든 높이가 200m도 안되는 검암산 자락에 이렇게 좋은 명당들이 자리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에요."

목릉을 둘러보고 돌아나오는 길에 원릉(元陵)으로 향했다. 원릉은 조선의 최장수 왕이었던 제21대 영조(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저기를 봐요. 산이 참 잘생겼지요. 저렇게 단정하고 예쁘게 생긴 산을 주변에 두어야 좋은 명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조광 선생이 가리키는 원릉 뒤편에는 아담하고 둥근 산이 봉긋하게 솟아 있다. 원릉의 혈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낙산(落山)이다. 또 그 옆으로는 부드러운 삼각형 형태의 영상사가 솟아 든든하게 뒤를 지킨다.

원릉 역시 건원릉보다는 좌우가 트였으나, 사방으로 일자문성을 이룬 구릉들이 겹겹이 둘러싼 모양은 다르지 않다.

"지금은 사방으로 큰 도로가 지나고 남쪽으로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는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양주목에 속했던 이곳이 더없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겠지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 이렇게 커다란 왕릉들이 자리를 잡고,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훼손되지 않은 채 500여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어찌보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어요. 풍수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에게 남겨진 아름다운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하겠지요."

동구릉을 둘러보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아름다운 왕릉을 구경하는 관람객들을 여럿 만났다. 다들 추운 날씨도 잊은 채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들의 머리위로 나무들마다 반짝이는 눈꽃이 눈부시다.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동구릉은 우리에게 행복이고 축복이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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