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와 배려심

오대영

발행일 2014-12-3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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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경주 최씨 집안은 조선시대부터 300년 이상 만석 부자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배경에는 철저한 가정교육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 있었다.

최씨 집안의 가훈 여섯가지는 첫째 과거를 응시하되 진사이상 하지 말 것,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모으지 말 것,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할 것, 넷째 흉년기에는 재산을 모으지 말 것,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는 시집와서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을 것, 여섯째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것이었다. 골자는 한마디로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을 보면서 경주 최씨 집안이 생각난 것은 재벌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문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부자 3대 못간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이해한다. 창업해서 대기업이 되기까지는 창업주의 탁월한 능력이외에도 유능한 직원들과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직원들이 진심으로 따르지 않고, 국민들이 외면하는 기업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창업주들은 사람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나 고생을 모른채 기업을 물려받은 후대들은 돈의 권력 맛에 길들여져 점차 사람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사람 위에 군림하려 든다. '그들만의 절대왕국'을 만들고, 그 안에서 호령하다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기업이 기업가의 절대왕국이 되면, 근로자들은 고객보다는 사주 눈치보기에 급급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업가는 현실에서 점차 멀어지고 환상속에 살게 된다. '땅콩 회항'사건 이후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조양호 회장님에게 안타깝고 측은지심을 느끼는 건 보좌하는 임원들 때문에 회사 현실을 제대로 못 보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이나 최고 경영층이 탑승할 때는 정비본부에서 비행기 문에 페인트가 벗겨진 곳을 붓펜으로 덧칠한다. 비행후에는 객실부서에서 비행기 사무장에게 수십차례 전화를 해서 마신 음료를 비롯 작은 것까지 물어 세세하게 정보수집을 한다."

이런 문화였기에 법적으로 승객의 한명에 불과한 조현아 부사장의 말 한마디에 기장이 승객 200명 이상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활주로에서 돌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승객들이 손해볼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승객을 완전히 무시한 이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벌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재벌 3세 경영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어릴때부터 매우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서, 부모의 회사에 입사한 후 초고속으로 승진한다는 패턴을 갖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동생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29살에 임원이 됐고, 몇 달전 한 방송에서는 스스로 "낙하산"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요즘 같은 취업대란과 경제난의 시대에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시샘의 대상이다. 우리 사회는 창업주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의적이지만, 재벌 3세들의 초고속 승진 풍토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벌가의 식구들이 많아지면서 2년 전에는 재벌기업들이 영세상인들이 먹고 사는 떡볶이·김밥장사까지 하려다 사회적 비판에 부딪쳐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재벌 3세들에 대한 사회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재벌 3세라고 해서 무작정 비판받아서는 안되겠지만, 재벌 3세들도 사회와 근로자들에 대한 배려심을 갖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솔선수범해야 '경주 최씨 가문'이 될 수 있다.

'땅콩 회항'사건으로 우리 기업문화가 국제적인 도마에 올랐지만, 우리 기업문화가 개선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전화위복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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