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이야기]두번째┃문탁 네트워크

공부가 삶이 되고, 일상이 공부가 되는 곳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5-01-0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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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자본에 포획당하는 나의 시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머리 맞대 공부하는 것이 공동체가 있는 이유

삶을 바꾼다는 목표 '인문학 공간'이 핵심
경제활동 펼치는 '마을 작업장' 갖추고
지역사회와 소통·교류위한 '카페'도 운영
이희경 대표 중심 5년전 9명서 100여명으로
고정된 이미지 거부 '별도 규칙' 안세워
강좌·토론회에 자립프로젝트까지 영역 넓혀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어느 골목의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주소가 큼직하게 쓰인 카페가 보인다. '874-6'이라고 쓰고, '파지사유'라고 읽는다. 숫자 아래로 '마을 공유지'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곳은 말하자면, '마을회관' 같은 공간이다.

얼핏 보면 그냥 카페지만, 뒤쪽으로 대형 세미나실이 있고, 밥과 반찬과 빵을 만들 수 있는 조리실도 있다. 필요한 사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마을회관이 있으니 당연히 마을이 있다.

파지사유 맞은편 건물 1층에 '월든'이라는 마을 작업장이 있고, 계단으로 한 층을 더 올라가면 이 마을의 핵심 본거지인 '인문학 공간'이 드러난다. 이 곳이 바로 '문탁 네트워크(이하 문탁)'다.

문탁은 이렇게 세 공간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마을이 있으니 마을 운영의 원칙이나 구성원이 지켜야 할 규칙이 있을 터, 이희경 대표를 만나 이를 물었다.

"규칙이요? 우린 그런 거 없어요. 규칙 없는 게 규칙이에요." 사실 본인은 마을 대표도 아니란다. 문탁의 탄생을 주동한 인물이라 대표격으로 활동하는 것 뿐이다.

문탁 식구는 100여명이다. 1년동안 세미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인원만 그정도다. 5년전 9명이 모여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던 것에 비하면 10배 이상 늘었다. 어느 조직이나 덩치가 커지면 일이 생기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규칙이 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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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 네트워크의 인문학 공간

"우리는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필요한 규칙을 발명해서 써요. 대의제를 차용하지도, 매뉴얼을 정하지도 않죠. 현장에서 논의를 하고 방법을 찾아서 해결하는 거예요. 규칙의 성질이 단단하지 않고 끈 같다거나, 심지어 연기의 형태라고 할 수 있죠. 매번 논의해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피곤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매뉴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마을 이름만 봐도 문탁이 얼마나 관성과 고정된 이미지를 거부하는 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마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지자체에서 마을 관련 사업을 시작하자 관료적인 인상이 덧씌워질까봐 '공동체'라는 이름을 썼고, 그리고 다시 '공유지'로, 최근에는 '공통체'라는 말로 문탁을 소개한다.

규칙은 없어도 마을 안의 사람들을 하나의 공통체로 묶어주는 근본 원리는 있다. 바로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문탁 식구들이 공부는 정말 '제대로' 한다. 머리를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삶을 바꾼다'는 목표를 두고 공부를 한다.

"고급한 '취미'정도로 하는 공부가 아니에요. 취미와 교양의 수준에서 공부하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바꾸어 주지는 못해요. 옛날 선비들은 가난을 감수하며 한 평생을 두고 공부를 했죠. 농부들이 잘 살아보자고 힘들어도 열심히 일하는 것과 같아요. 이들이 힘들게 일하는 것처럼 공부도 힘들게 해야 돼요. 그래야 삶이 바뀌죠. 내가 바뀌는 만큼 세상도 바뀌는 겁니다."

처음 문탁의 구성원은 9명이었다. 지난 2009년, 이희경씨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의 생활을 접고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의 마음은 '세상을 구원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구원하자'였다. 그 구원의 방법이 공부였다.

함께 모여 공부를 하다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씨의 집 거실에 접이식 테이블을 두고 철학자 '일리히'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동네 시설 청소년들과도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됐고, 공부의 범위도 넓어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나 한미FTA같은 일이 생기면 전문가를 모셔다가 마을공개강좌를 연다. '통합 진보당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마을 100분 토론'을 열기도 하고 '밀양 송전탑 반대를 위한 용인시민 촛불집회'같은 '골목집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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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작업장 월든의 길쌈방
활동 영역을 넓혀 동아리 활동을 하다 자립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마을과 경제'라는 세미나로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마을과 경제 사업단'을 꾸려 돈을 버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술을 활용해 시장과 화폐, 외부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마을작업장 '월든'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별걸 다 만든다. '신목수 목공소' '자누리 화장품' '봄날 길쌈방' '노라찬방' '담쟁이 베이커리'는 시장에서 배제된 '그림자 노동'을 삶의 생산능력으로 재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을 살림을 든든히 살찌운다. '월든 중고장터'는 숨어있던 물건들을 다시 순환시킨다.

'복'이라는 마을화폐도 통용된다. 배움을 토대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원리는 그야말로 문탁 안에서 돌고 돈다. 문탁이 변하는 동안, 문탁 안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삶도 변해갔다. 그리고 변화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문턱이 닳도록 문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렇게 문탁은 번듯한 마을로 우리사회의 한 부분을 밝히고 있다.

5년동안의 외적 성장과 내적 성숙은 다른 여러 마을에 모범이 됐다. 그러나 그만큼 성장통을 겪고 있기도 하다. 덩치가 커진만큼 내부를 횡단하며 활동할 수 있는 힘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규모가 크든 작든 마을 안에서 일은 매일 벌어져요. 그게 공동체죠. 잘못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들이에요. 이런 문제들을 알고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규모가 너무 커지면 문제 자체를 모르게 된다는 게 진짜 문제죠. 전체가 커지니까 문제들이 '국지화'되고, 드러나지 못하고 덮여요. 덮이면 곪고, 결국 터지죠. 그래서 외연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서로서로 더 많이 섞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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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파지사유
문탁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친구와 함께 공부를 통해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작고 단단한 네트워크. 우리의 공부가 우리의 삶이 되고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공부가 되기를 꿈꾸는 곳. 수 천 개의 공부가 수천 개의 삶으로 창안되는 곳'. 공부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면 가볼 만하다.

그러나 같은 뜻을 품은 공동체 마을 안에서의 삶이 100% 만족스럽더라도 세상과 단절하고 그 안에서만 살 수는 없다. 문탁 역시 지역과의 소통과 교류를 지향한다. 1년 전 카페 파지사유를 만들 때 이 곳을 통해 지역민들과 더 가까워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지역민들의 발걸음은 뜸했다. 섞일 줄 알았던 지점에서 오히려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었다.

"공동체가 가진 특성이 풍기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사람들은 감지해요. 카페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전문점 수준의 커피맛을 내든가, 가격이 아주 저렴해야 하겠더라고요. 일반적인 경제논리가 필요한거죠."

그렇다고 해서 문탁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가치를 낮게 볼 수는 없다. 카페는 뭇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더라도, 문탁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문탁을 닮은 공동체 마을도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공동체가 많아지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공동체가 많고적고보다는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바꾼 개인들의 더 많은 사례가 필요해요. 공동체의 일원이 많아지는 지금 현실은 다르고 살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가 충만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르게 살아보려는 수많은 실험들이 진행되는거죠. 공동체 회원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국가나 자본에 포획당하는 나의 시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머리 맞대 공부하는 것이 공동체가 있는 이유입니다."

/글 = 민정주기자·사진 = 하태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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