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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일상의 평안 비는 새해 소망 팍팍한 현실 반증
영화 '국제시장' 아픈 과거사 감정이입 위로받아
시인처럼 따뜻한 생명공동체 연대서 기쁨 찾아야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다짐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덕담도 나눈다. 올해는 좀 더 살기 편안해지기를…. 가족들 건강하고 경제사정이 보다 좋아지기를…. 가만히 헤아려보면 우리의 소망은 현실적이다. 일상의 평안이면 족하다. 실상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전세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의 설움을 감내하며 경제적 불평등과 위화감 속에서 매일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정부는 소득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삶의 구체적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진학걱정·취업걱정·결혼걱정·양육걱정·연금걱정…, 우리는 어느새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사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간다.

기쁘고 좋은 일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우리를 위로하는가. 현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울 경우 복고가 그 해답이 되기도 한다. 서럽고 가슴 아픈 과거라도 거기에는 최소한의 공감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 관객 수가 곧 1천만명을 넘어설 듯하다. 흥남 출신의 꼬마소년이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해 평생을 살아온 이야기가 골간을 이루는 가운데 필름은 격동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듬성듬성 보여준다. 흥남철수·파독광부·월남전참전·이산가족 찾기 등 당대의 주요한 사건을 재현하는 데 주력한다. 따라서 영화는 주인공 윤덕수의 개인사나 가족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사를 동시에 보여준다.



세대에 따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반응 차이가 있지만 조국 근대화 세대의 노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점은 많은 관객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그것은 찬란한 과거의 영화(榮華)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기억과 역사의 켜 속에 잠들어 있던 서러운 슬픔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면서 오늘 우리의 작은 즐거움과 기쁨이 이전 세대에게 빚지고 있다는 심리적 채무감을 확인시켜 준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이전에는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억척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조국 근대화에 몸바쳐 살아왔던 이들에 대한 헌사로 읽힌다.

삶에서 기쁨이나 즐거움을 찾는 일은 단순한 쾌락추구가 아니다. 또한 일상의 평안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선(善)도 아니다. 우리가 일상의 질곡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기쁘고 즐거운 일은 허공의 구름처럼 덧없게 된다. 활기찬 건강과 아름다운 외모, 신분의 안정과 물질적 풍요가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인 듯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구생명공동체 전체로 눈을 돌려 모두 함께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미당 서정주 시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은 것'(1993)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은 것은/낳아서 백일쯤 되는 어린 애기가/저의 할머니 보고 빙그레 웃다가/반가워라 옹알옹알/아직 말도 안되는 소리로/뭐라고 열심히 옹알대고 있는 것.//그리고는/울타릿가 감나무에/산까치가 날아와서/뭐라고 거들어서/짹짹거리고 있는 것.//그리고는/하늘의 바람이 오고 가시며/창가의 나뭇잎을 건드려/알은 체하게 하고 있는 것."

시인은 생명체들이 따뜻하게 연대하는 모습에서 삶의 기쁨과 공동선을 발견한다. 이런게 지혜가 아닐까? 새해 들어 새롭게 기쁘고 즐거우려면 우리도 주변에서 많이 발견하면 된다. 추운 겨울에도 햇빛은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해주는가. 지금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밥은 우리 생태계의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나를 위해 베풀어주는 것이던가.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한 다음 눈을 크게 떠서 더 멀리 바라보자.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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