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때부터 슈퍼갑?

김방희

발행일 2015-01-22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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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재벌총수들 자신들 자녀
법과 제도, 심지어 도덕위에
존재하는 특권층으로 키워
오블레스 노블리주 고사하고
사회적 규율을
따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해


미국 대형 상업은행의 프라이빗뱅크(PB·private bank) 팀장이었던 재미교포와 PB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야 PB는 돈 많은 자산가들의 재테크를 돕는 것이 주업무다. 미국에서도 갑부들을 돕는 일은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 영역이 재테크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삶 전 영역에 걸쳐 상담하고 조언한다. 그 가운데는 2세의 인성 교육 및 사회화 훈련도 포함돼 있다. 부호 자녀들이 사회와 공존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가르치는 데 엄청난 신경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미국의 이름난 부호 자녀들의 비리나 탈선 소식은 흔치 않다. 자신이 후원했던 레슬링 선수를 쏴 죽인 듀퐁가 후계자가 있었지만 정신 질환 탓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근래의 예로는 오랫동안 파티걸의 면모를 잃지 않는 힐튼가의 상속녀도 있기야 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의 관심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나름의 상술일 뿐 상식에서 벗어나는 비리나 탈선은 아니다.

우리 재벌 2, 3세들의 인성이나 사회적 처신에는 큰 문제가 있다. 이번 '땅콩 회항'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나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거의 모든 재벌가가 예외 없이,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종업원에게 체벌을 가하며 돈으로 갚아주겠다던 이도 있었고, 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내달린 이도 있었다. 유명 연예인과의 관계도 끊임없이 연예 뉴스에 오르내린다. 숫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나 사고가 벌어지면 네티즌들은 늘 같은 의문을 품을 정도다. '뉘 집 자식이래?'

오블레스 노블리주는 고사하고, 보통 사람처럼만 처신했으면…

부호 2, 3세의 인성과 처신이 한미 양국간에 이렇게 갈리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미국사회가 자수성가를 중시하고, 명문가가 상속과 승계에 덜 관심을 갖는 것도 한 원인이다. 재산의 대부분을 당대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마당에 빌 게이츠 자녀들이 특권의식을 뽐낼 이유야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호 자신의 의식과 행태를 빼놓고 이 문제를 논할 수는 없다. 한 마디로 우리 재벌총수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법과 제도, 심지어 도덕 위에 존재하는 특권층으로 키우고 말았다. 자신의 성인 자녀가 맞고 돌아오자 자녀의 유흥가 출입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데리고 가 보복을 하는 것이 우리 재벌가의 부모다.

미국 부호들은 자녀들에게 사회보다 더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반면, 우리 재벌가는 사회보다도 낮다. 오블레스 노블리주(noblesse oblige·고위층에 요구되는 엄격한 의무)는 고사하고 평범한 정상인에 요구되는 규범에도 못 미친다. 아니, 그들은 사회적 규율을 따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몇몇 보도를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재벌가의 자녀들은 학교 선택에서부터 학교내 처우까지 남다르다. 심지어 유학생시절 리포트를 대신 써주던 해외 주재원 얘기도 당사자한테 들은 바 있다.

재벌가 총수부터가 그룹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녀 교육법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최근 자녀들의 터무니없는 처신으로 이미지 추락이나 주가 급락 등 회사에 입힌 막대한 피해는 어떤가? 외환위기 당시 무너진 주요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던 재벌가라는 분석도 있다. 재벌의 최대 승계 리스크는 총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분구조나 상속증여세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녀들의 인성과 처신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몇년 전 명동 상권의 한 부동산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그 지역 빌딩 오너 몇이 최근 갑작스레 매물을 내놓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그들이 빌딩을 통째로 물려줄 경우 자녀들 사이에 재산 분쟁이 벌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럴 바에야 빌딩을 매각해 부부가 평생 못해본 해외여행이라도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젊어서부터 그들이 힘들게 번 돈을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넘겨주지는 않으리라는 각오로 자녀교육을 했다면 어땠을까? 애초부터 자식 농사를 망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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