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화해로·4]보수-진보, 끊이지 않는 이념논쟁

이웃도 갈라놨다 ‘해묵은 보혁갈등’
통진당 해산 싸고 주민간 입장차
인천명물 맥아더 동상 논란 여전

박석진·김민욱 기자

발행일 2015-02-03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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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1시30분께 성남시 중원구 중앙동. 대법원의 정당해산 판결이 내려진 지난해 12월 19일까지 옛 통합진보당 김미희 전 의원의 지역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중원구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경인지역에서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을 배출(심상정 의원은 탈당)했던 지역, 중앙동은 김 전 의원의 정치활동에 기반이 됐던 곳이다.

김 전 의원에게 46.77%(4만6천62표)를 줬던 지역민들의 민심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중앙동에서 만난 복수의 시민들은 “통진당은 우리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준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의원이 입주했던 H빌딩에서 수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김모(45)씨는 “거드름만 피우던 다른 의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며 “북한을 따랐는지, 따르지 않았는지는 관심 없다. 철저히 민생 속으로 파고든 정당이 바로 통진당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원구의 바로 옆 지역인 분당구는 같은 성남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분당 중앙공원에서 만난 이모(56) 씨는 대법원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통진당은 ××들”이라며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했다. 좁은 땅덩어리가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것도 통진당 때문이라고 목청을 높였고 주변 사람들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슷한 시각 인천 중구의 자유공원.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이곳에서 시민들은 동상에 대해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구국의 영웅을 지켜야 한다’는 동상 보호 주장과 ‘미국에서도 해임당한 인물을 숭배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동상 철거 주장은 아직도 평행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맥아더 동상은 1957년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기념해 서울 화신백화점 뒤쪽 창고건물에서 제작돼 이곳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기단이 낮았지만 높은 기단으로 바뀌면서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맥아더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만큼 높아졌다.

인천의 ‘명물’이었던 맥아더동상은 이후 철거 논쟁에 휩싸이면서 갈등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 보혁갈등의 상징적 기념물이 돼버린 것이다.

한 시민은 “맥아더 동상 문제가 풀리는 날 우리의 보혁갈등도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진·김민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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