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한류의 그늘

이한구

발행일 2015-02-04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940533_501811_5201
▲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세계적 ITC 강국답게 e정부는 세계최고 수준
전자정부서비스의 지속적 업그레이드 불문가지
납세자편의에 수많은 컴맹들 또 얼마나 시달릴지


수도권 중견기업에 다니는 ‘컴맹’ K부장은 지난주에 또 한 번 곤욕스러운 연례행사를 치렀다. 수년째 봉급은 제자리이나 주거비와 자녀교육비 등은 갈수록 올라 한 푼이 거금이어서 절세 필요성이 더욱 커졌으나 연말정산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꼭지(?)가 돈다.

‘13월의 세금폭탄’ 탓만 아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임금근로자들은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영수증 등 1년 치 증빙자료들을 한꺼번에 경리부서에 넘기면 그만이었지만 근래에는 각자의 소득정산업무를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올해에는 정산방식이 종전과 달라 K부장은 더 곤혹스러웠다. 같은 처지의 동료들처럼 IT에 능숙한 젊은 부하 직원들의 도움이 절실하나 매번 신세를 지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컴맹이란 사실을 사내에 더는 노출시키기도 민망해 이번엔 자력으로 난제(?)를 처리했다.

각종 소득공제 영수증은 반드시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발급받은 것이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전자세정인 홈택스(hometax.go.kr)를 이용하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홈페이지 접속과 함께 스미싱이나 파밍 등 각종 사이버 금융사기 경고 팝업들이 K부장을 긴장시켰다. 마지막 통과의례는 각종 세무자료를 항목별로 PC에 입력하는 작업이다. 회사에서 입력관련 설명서를 첨부했으나 생경한 용어들이 많아 해득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입력시 실수 염려는 물론이고 작업을 종료했어도 제대로 잘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어 개운치 못하다. 더 낸 세금은 되돌려준다고는 하나 회사 일만 해도 오버로드인데 언제 신경을 쓰겠는가 말이다. ‘세금도둑’이란 오명은 더더욱 반갑지 않다.

1천600만 명의 임금근로자 중 연말정산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종합소득세 신고철인 매년 5월에는 세무서마다 인산인해의 컴맹 납세자들로 한바탕 소동을 치른다.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는 하나 전자정부의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는 인상이다. 오로지 조세수입에만 공을 들일 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소홀한 정부의 전체주의적 발상에 실망이다.

전자정부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서 최소비용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행정문서의 부처 간 전자교환 및 전자결재, 영상회의시스템, 데이터 구축에 따른 정보의 공동활용 등으로 조직 및 절차의 슬림화를 도모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민원인들은 행정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함으로써 실익이 크다. 그리고 국민과 정부 간의 의견교환이 한층 빈번해져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등 행정의 창조적 파괴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ITC 강국답게 e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말 유엔이 발표한 2014년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우리의 ‘정부 3.0’은 2010년, 2012년에 이어 3회 연속 세계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전자정부서비스는 기존의 민원신청 위주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한 최첨단의 서비스(‘O2O’)로의 진화가 임박한 지경이다. 한국의 행정시스템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열기가 뜨거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e정부 프로그램의 수출실적도 괄목하다. 2002년 처녀수출 이래 매년 수출액이 증가한 결과 작년에는 전년보다 13% 증가한 4억7천만 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지능형교통시스템(ITS), 관세시스템(UNI-PASS)이 대표적인 효자 수출상품이나 최근에는 국민신문고, 안전통계시스템까지 추가되었다. 올해부터는 대기업들에도 전자정부사업 참여의 길이 열려 수출전망은 한층 밝아졌다. 정부는 전 세계에 ‘행정 한류’ 바람을 일으킬 각오로 올해에는 관련 예산을 파격적으로 증액했다. 전자정부서비스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는 불문가지이다. 스마트시대에 부합하는 정부서비스의 효율화, 투명화는 세계적 추세인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또 얼마나 많은 K부장들이 ‘행정 한류’의 그늘에서 시달릴까. 이미 3세기 전에 조세행정의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납세자들의 편의를 강조했던 애덤 스미스가 돋보인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