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만화세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청춘의 일상이야기

영춘 ‘사사롭지만 좋은 날’, 애니북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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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작고 예쁜, 팬시해 보이는 일러스트 책처럼 보인다. 도시의 멋진 카페에 앉아있는 젊은 여성의 가방 안에서 슬쩍 얼굴을 내밀고 있다가,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급히 사무실로 함께 들어갈 것 같은 책이다. 멀리는 ‘프렌즈’나, 아니면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느낌이랄까. 버드아이뷰로 젊은 활력이 넘치는 도시를 바라보는 표지가 있어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사롭지만 좋은 날’이라는 만화 제목도 그저 기쁘고 좋았던 20대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 만화는 20대의 사사로운 이야기다. 사사롭다는 건, 시간이 지나면 그저 ‘그런 적도 있었지’하며 추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일상은 늘 사사로움과 사사로움이 만나 의미를 얻는 것. 그래서 만화를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뭔가 잃어버린 감성들이, 하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 이야기인데, 매화 새로운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을 거쳐 꼬리를 물고 진행된다. 첫 화는 연두의 이야기다. 실기실에서 밤을 샌 연두는 친구 현서에게 ‘샴푸’를 빌려달라고 한다. 현서는 아무렇지 않게 승빈이 샴푸를 사용하라고 하는데, 사실 연두는 승빈에게 마음이 있다. 실기실 책상을 옮기며 처음 만났을 때, 우연히 손이 닿았을 때, 콘셉트 스케치 모티브를 가져온 작가를 승빈이도 좋아한다고 할 때, 전시회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좋아하는 감정이 조금씩 싹텄다. 하지만 승빈은 무심히 소개팅에 나간다. 사소한 순간이 쌓여 만든 두근거림과 그 기억을 떠올리는 샴푸의 냄새. 보통의 청춘 로맨스라면 그다음이 준비되어 있지만, ‘사사롭지만 좋은 날’은 이걸로 끝이다. 어쩌겠는가? 우리의 일상은 원래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샴푸 냄새가 기억을 소환하지만, 일상은 거침없이 돌아간다.



시범은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 편하게 학교를 다닌다. 사고 싶은 한정판 신발을 사고, 처음 생긴 식당에는 꼭 가야 하고, 헤어스타일과 패션에 돈을 쓴다. 그런 시범이 어렵게 구한 한정판 신발을 기다릴 때, 현서는 낡은 신발을 신고 아르바이트에 간다. 한 공간 안에 문득 다른 친구들이 있다는 걸 안 시범은 자신의 삶에 대해 잠깐 고민을 한다. 시범과 현서는 서로를 신경 쓰게 된다.

영민은 결혼해 아기를 낳은 언니 영선에게 놀러 간다. 처음 보자마자 살쪘다는 말을 하고, 빨랫거리에 있던 속옷을 보고 “헐 이거 완전 할머니 팬티잖아”라고 놀란다. 언니는 “너도 얘기 낳아봐~ 다 살찌고 그런데 편해”라고 대답한다. 언니가 시장을 보러 나간 사이 영민은 문득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언니를 떠올린다. 승빈은 사사로운 일상에 스스로 내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 나올 때 요구르트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으면 소개팅에 예쁜 여자아이가 나오고, 버스 정류장에 3번 버스가 먼저 오면 지각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자질구레한 내기다. 잠깐의 낭만을 지나 다시 과제를 보는 것처럼, ‘사사롭지만 좋은 날’은 오늘을 사는 20대 젊은이들의 날이다. 그래서 그 날들은 그들이 지닌 다양한 갈등과 고민에서 나온다. 정말 사사로운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삶이 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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