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
수십년 고통받은 주민들 달래주는 예의 이기도
국가현안으로 적극 해결하는게 모두가 사는 길
속담에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 수도권매립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면서 새삼 이런 속담이 떠오른 건 빠른 결론을 위해 우리가 너무 서두르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서다. 결론을 내릴 만큼 충분한 준비가 됐는지도 의문이다. 매립지 종료기한은 2016년이다. 당장 내년이라고 생각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1년 이상 남았구나 라고 달리 본다면 아직도 시간은 충분하다. 컵 속에 절반쯤 남아있는 물을 두고 ‘절반이나 남았네’ 와 ‘절반밖에 없네’의 차이와 같다.
매립지의 기한 종료를 앞둔 지역의 여론은 ‘이제 그만’이다. 더 이상 쓰레기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싶지 않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시민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1989년 매립지가 만들어지고 92년 반입을 시작한 뒤부터 악취와 소음으로 인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소망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지금도 여름철에만 500여 건이 넘는 악취관련 민원이 들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고통과 어려움은 외면한 채 인천을 쓰레기 매립지가 있는 환경오염도시쯤으로 인식하는 외부의 시선이다. 2천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생활을 위해 매립지가 있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데도 삐딱하기만 한 외부의 시선은 기한종료를 요구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물론 당장 대안이 없는데 어떡하느냐는 의견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게 현실적인 딜레마다.
주민들의 요구를 담아내고 딜레마를 해결하며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인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매립지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친 20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인천시와 각계각층의 인사, 주민대표가 참여하고 있는 수도권 매립지 시민협의회를 활성화해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야 한다. 혼란도 있고 불편도 따르고 의견대립으로 인한 논란도 있겠지만 비 온 뒤에 땅 굳는다고 그렇게 모여진 뜻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해당 지역이 청정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뒷받침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인천의 문제는 수도권의 문제고 수도권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문제다. 인천이 수도권에서 하는 역할과 수도권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선은 인천시와 서울시, 경기도, 환경부 등 4자 협의체가 지난 1월에 체결한 수도권매립지 정책 개선을 위한 합의문이 확실하게 이행되도록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수도권매립지의 소유권과 면허권, 토지소유권의 인천시 이양은 즉각 실현돼야 하고 매립지 관리공사의 인천시 이관도 늦출 이유가 없다. 서울도시철도 7호선과 인천도시철도 1호선의 연장과 조기착공 문제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답을 줘야 한다. 반입 수수료의 50%를 가산금으로 징수해 인천시 특별회계로 전입하는 문제도 매듭이 분명해야 한다. 인천시의 선제적 조치가 10조원이 넘는 가치를 창출한다는 발표가 말만이 아닌 실질적인 이득이고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앞장서서 확인시켜야 한다.
매립지로 인해 상처받은 시민들의 아픈 가슴을 달래주는 것은 인천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게 수십 년 동안 고통받은 주민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매립지 문제가 밀양이나 강정마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지금 디딘 작은 첫발이 미래를 향한 거대한 첫걸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매립지문제를 국가의 현안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정부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 그게 모두가 사는 길이다.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