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이여, 지아요우(加油)!

이백철

발행일 2015-02-2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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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
옛 서독·월남·사우디에서
아버지들이 흘린 피와 땀이
후세대 번영으로 이어졌는데
안타깝게도 그들과의 경쟁
사교육비 부담·조기 퇴직으로
힘과 기개 잃어가고 있다


인생의 역정에서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였는가를 연구한 사례가 있다. 하와이의 어느 외딴 섬에서 성장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40여년을 추적하여 조사한 것이다. 그 아이들이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하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위대한 인류애를 실천한 슈바이처 박사나 테레사 수녀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문득 나에게는 사막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았을 이름 모를 아버지들의 희생이 무겁게 다가온다.

얼마 전 TV에서 ‘학교 가는 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방영되었다. 인도 히말라야의 산간 오지 마을에서 자식들을 먼 도시지역 학교로 보내려고 애쓰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그린 내용이었다. 영하 20도가 넘는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강을 맨발로 건너기도 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빙벽을 타기도 하면서 200㎞를 행군하여 자식들을 등교시키는 아버지들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다큐멘터리였다. 제대로 된 방한복이나 침낭도 없이 혹한 속에서 20일의 장정을 마치고 홀연히 귀향할 때까지의 아버지들의 담담한 모습이 눈앞에 며칠이고 아른거렸다. 아버지들의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그 험난한 얼음 강을 필사적으로 건너게 했을 것이다. 이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넘어, 인간이란 생명체의 영원성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들의 삶은 그토록 힘겨운 것이었겠지만 이렇게 극복해왔을 것이기에 우리 모두의 삶은 영원할 것이라는 절대성을 심어주는 감동의 서사시였다.

경상도 어느 전직 총장님의 고백이다. 가난한 소작농이셨던 이 분의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도시로 유학 보냈지만 아들은 반에서 꼴찌를 한 것도 모자라 성적표를 1등으로 조작하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1등 했다는 아들을 자랑하기 위해 재산 1호인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인 것이다. 평생을 양심의 가책으로 살아왔던 아들이 33년 만에 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어무이… 그 때 1등은요…” 그 때 아버지가 가로막으며 말씀하셨다. “알고 있었다. 고마 해라. 손자가 듣는다.” 어찌 그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기다림을 빼고 그 아들의 총장까지의 성공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나는 햇볕이 좋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아들 침대에 널브러진 이부자리를 부둥켜안고 가서 베란다 건조대에 널곤 한다. 그때마다 문득 나의 그 모습에서 아버지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께서는 날씨가 쾌청한 날이면 늘 그렇게 내 잠자리 침구들을 평상과 빨랫줄에 널어 놓으셨던 것이다. 나는 그날 밤 그 이부자리가 왜 그렇게 폭신했고 따뜻했는지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고 있다.

우린 주변에서 집까지 팔아가며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는 아버지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도 기러기가 되는 처지도 거침이 되지 못한다. 그것이 간혹 기러기 아빠의 슬픈 고독사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안타깝게 공감할 뿐 대한민국의 어느 아버지도 그를 세차게 몰아붙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이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서독에서, 월남에서, 사우디에서 아버지들이 흘린 피와 땀이 후세대들의 번영과 부국강병으로 이어졌듯이, 노후를 개의치 않고 기러기의 고독을 마다치 않는 이들의 DNA가 우리 아들과 딸들의 건강한 미래로 현시 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이 후세대와의 경쟁, 과중한 사교육비의 부담, 조기 퇴직 등으로 힘과 기개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 이 순간만이라도 어디선가 의기 소침해 있을 대한민국의 뭇 아버지들에게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지아요우(加油)! 중국인들이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힘내라고 외치는 구호이다. 기름을 부어 활활 멋지게 타오르게 하자는 뜻이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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