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실패에서 배울 점

김방희

발행일 2015-02-2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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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큰 정치를 해야 할 대통령은
무능한 정치권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럽 각국의 정치는
글로벌 경제의 목줄을 쥔
‘통합 실패’서 교훈 얻어야


각각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들이 한 데 모여 살기로 했다. 각자의 몫인 수입과 지출도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막상 그 합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각기 경제력 차이가 적지 않은 가족들 사이에 셈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능력 이상으로 써버린 막내네는 잘 사는 형이 나서서 해결해주길 바랐다. 반면 맏형은 막내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었다. 처지도, 계산도 다른 가족들의 어설픈 공동생활이 이어지면서 후유증은 끊이질 않고 있다.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를 암울하게 하고 있는 유럽 통합에 대한 비유다. 2010년 무렵 그리스에서 비롯된 유럽 위기는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물론 당장의 파국은 면했다. 최근 긴축 정책을 거부하며 집권한 그리스 시리자당과 유럽 채권기구는 구제금융의 4개월 연장에 합의했다. 당분간 그리스가 국가부도(default)를 내거나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유럽 위기는 60년 동안 이어져온 유럽 통합 과정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한 나라가 되겠다던 회원국들 사이의 경제적 수준 차는 너무 컸다. 여기에 통합 과정도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내 문제 국가들은 그간 독립적인 경제정책을 펼 수 없었다. 통화 통합을 이룬 터라 통화금융정책은 개별 국가가 아닌 유럽중앙은행(ECB)의 몫이었다. 자연히 재정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 결과 재정정책 남발로 재정 위기가 불가피해졌다.

유럽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제 둘 중 하나다. 이른바 ‘고 유럽’(go Europe)이냐, ‘스톱 유럽’(stop Europe)이냐다. 전자는 유럽 통합을 가속화 하는 길이다. 그래야 각국의 절름발이 경제정책을 면한다. 그러자면 부실화된 유럽 은행들을 통합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정정책을 공유해야 한다. 유럽의 이름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빚을 갚을 세금을 거둬야 한다. 이는 유럽 경제의 맏형 격인 독일의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

아예 통합을 없던 일로 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스를 예로 들면 예전 독자 통화인 드라크마화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 독자 통화의 가치는 폭락하겠지만, 이를 통해 경제가 회생할 길도 생긴다. 외환위기 당시 수출에 숨통이 트여 부활한 우리 경제와 비슷한 위기 극복 방식이다. 집권당이 된 시리자는 유럽연합 탈퇴(Grexit)를 무기로 은근히 유럽 채권기구들을 압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원리금 탕감을 포함한 부채 구조조정과 긴축 조치 완화를 바라고 있다. 최근 합의는 두 입장을 어설프게 절충한 결과다.

그렇다면 조만간 유럽 위기가 풀릴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살림을 합치기로 한 형제자매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 보자. 형제자매끼리라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각의 배우자와 자녀 등 이미 일가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이해 때문에 단안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국내 유권자의 정서를 고려하느라 쉽게 양보하기 어렵다. 반면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와 같은 문제 국가는 물론, 심지어 영국 같은 곳에서도 유권자 사이에서 반유럽·반통합 정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이 언급했던 ‘불어터진 국수’의 비유가 화제다. 정치권에서 부동산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법안 처리가 늦어진데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털어놓은 표현이다. 웬만하면 정치권에 대한 비난은 국민의 공감을 산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적극적으로 공감하기가 어렵다. 지금 이 시점에 내놓아야 할 메뉴가 ‘국수’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상습적으로 늦어지는 ‘배달’도 미리 고려했어야 할지 모른다. 큰 정치를 해야 할 대통령은 무능한 정치권에 대한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자리다. 이것이 바로 유럽 각국 정치가 글로벌 경제의 목줄을 움켜쥔 유럽의 실패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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