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회 설립 주도·차문화전 개최
40여년 국내외 다양한 행사 앞장
공로 인정 문화훈장 보관장 수훈
우리나라 차문화 보급과 정립을 위해 헌신한 1세대 차인(茶人)인 이귀례 한국차문화협회 명예 이사장이 타계하자 대한민국 차인들은 “차(茶) 문화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년전인 2000년 6월 4일 인천대공원 야외음악당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벌어졌다.
오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유치원생, 갓을 쓰고 선비의 멋스러움을 한껏 뽐내는 대학생까지 600여명에 이르는 어린아이와 청년들이 한복을 입고 모였다. 오랫동안 우리 고유의 차문화를 배워 익힌 학생들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기 위해 모인 것이다.
차(茶)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효(孝)와 예(禮), 지(智), 인(仁)을 일깨워 주고 건강하게 자라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1회 전국인설차문화전 당시의 풍경이다. 이후 인설차문화전은 차예절을 널리 알리는 가장 큰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이귀례 이사장이 이렇게 자신의 호(인설)를 딴 문화전을 개최하는 등 40여 년동안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우리 차를 알리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당시엔 미군의 보급품 커피를 마셔야만 문화인이라고 여겼다.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타 ‘차’라고 부르던 그 때 고인은 우리 차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차문화는 6·25 전쟁을 겪으며 거의 명맥이 끊겼고 차 재배가 이뤄지던 전라도 일부 차밭 지역에서만 차인들이 명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 2000년 제1회 전국인설차문화전 차 예절경연대회에서 이길여(가운데) 회장과 차시음. |
1980년대 지인들과 함께 ‘국산 차를 사랑하자’는 어깨띠를 두르고 서울 종로통을 돌았다. 커피 등에 밀려 우리 차가 소외되고 있던 현실에서 우리 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였다. 차인들의 열정은 차인회 설립 1년만에 ‘차의 날’(5월 25일) 지정을 이끌어냈다.
고인은 1982년 7월부터 인천의 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다례교육을 시작했다. 모든 교육은 무료로 진행했다.
고인은 1991년 전국 단위로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차문화협회의 부회장을 맡으며 차문화 보급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차문화협회는 이후 차예절 지도사범 교육에 착수하는 한편, 우리 차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국내·외 차문화 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1994년 4월 덕수궁에서 ‘한·중·일 국제 차문화행사’를 열고, 1995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대학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에서 ‘한·독 국제 차문화교류전’을 가졌다.
차문화가 민간 문화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 것이다. 1996년엔 미국 버밍햄 ‘한국의 날’ 행사와 애틀랜타시 하계올림픽 때 ‘한·미 국제 차문화교류’ 행사를 가졌고, 이 자리에선 한복 패션쇼를 함께 열어 현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2005년 전국 인 설차 문화전 차 예절 경연대회에서 동생인 이길여 회장, 큰딸인 최소연(오른쪽)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현)과 차 만들기 시연을 하고 있는 고인. |
고인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차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수훈했고, 2002년 12월에는 인천시무형문화재 11호 규방다례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2014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때 개최한 차인큰잔치에는 전국의 차인 뿐 아니라 중국과 대만, 일본의 차인들이 대거 참가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고인은 ‘한국의 차문화-우리 차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규방다례’를 손수 집필했다. 2010년부터 5년간 연구를 진행한 ‘조선시대 여성의 차문화와 규방다례’는 2014년 간행과 동시에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33개 무형문화재 단체들의 전수 공간인 인천 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을 전국 최초로 문을 열게 하는데도 고인의 힘이 컸다.
큰 어른을 보내드려야 하는 전국의 차인들은 고인의 차문화에 대한 열정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김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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