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이야기] 아홉 번째┃의정부 ‘문화살롱공’

예술가들 ‘소통 프로젝트’
공동체 갈등과 상처 보듬다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5-03-1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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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살롱공 박이창식 대표.
2008년 박이창식 대표 중심 ‘카페 공간’서 작품·전시활동 시작
사진·영상 등 활용 수몰위기지역 주민간 가교로 사회적 역할
‘금이 간 유리그릇 붙이는 접착제’ 척박한 땅 문화예술 씨뿌려


유리로 만든 그릇은 항상 깨질까 조심스럽다. 제 아무리 내구성 강하게 만들었다 자부해도, 유리가 가진 소재의 성질 자체가 깨지게 마련이다. 사람을 담는 공동체도 유리그릇과 다를 게 없다. 누구보다 단단하게 다져진 세월을 자랑해도, 인간관계 속성상 아주 작은 균열에도 흔들리고 금이 가는 게 공동체다.

수십 년을 동고동락하고, 수백 년 조상 대대로 같은 성을 가진 가족끼리 모여 사는 마을도 외부의 충격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이미 금이 가버린 마을 공동체로 뛰어들어 균열을 메우고 상처를 보듬으려 노력했던 예술가 공동체의 이야기다.

의정부에 ‘공간’이란 이름의 작은 카페가 있다. 이곳은 뜻 맞는 예술가들의 공동체 ‘문화살롱공’의 소통창구다. 문화살롱공 박이창식 대표는 2008년 이 곳 지하실에 작품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2003년부터 ‘스폰치’라는 이름으로 그룹 예술활동을 했는데, 주로 사회적 고민들이 깃든 현장에 개입해 의미를 던질 수 있는 예술적 행위를 해왔어요. 그 와중에 작가들이 함께 모여 작품을 고민하고 때로는 전시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더라구요.”

그렇게 문화살롱공은 ‘작가중심의 공간’으로 출발했다. 1년이 지난 2009년, 지하뿐 아니라 1층까지 작품 공간으로 사용키로 하고 올라와 보니 마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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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성현기자·아이클릭아트
“마치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 느낌이었죠. 지하에 있던 시간은 그저 우리 작품에만 집중했던 시간이었는데, 1층에 올라오니 전면 창을 통해 지나가는 주민들이 보이고 마을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무언가 마을에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경기북부를 안고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경기 북부 일부 지역에 우연히 수몰지가 형성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2000년부터 추진된 한탄강 홍수조절용댐 건설로, 연천군 고문리와 포천 교동마을이 수몰 위기에 처해 있었다.

문화살롱공은 연천 고문리로 찾아갔다. 오랜 시간 한 마을에서 형님, 아우로 살아왔던 그들이라 했다. 그러나 이미 댐 건설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주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못 먹고 못 살아도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온 마을 공동체는 붕괴 직전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문화예술이 균열이 시작된 공동체를 붙이는 접착제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2009년 9월 ‘재인 폭포상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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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 도롱이집 이주프로젝트 ‘마을문화기록관’.
“언론을 통해 서로 갈등만 부추기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주민들도, 수자원공사도 모두 예민해진 상태였어요. 우리는 갈등을 봉합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것이니까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모두의 이야기를 담기로 했죠.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수자원공사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수몰되면 사라져버리는 마을의 역사도 담아냈어요. 그렇게 속 깊은 이야기를 보자 ‘형님한테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 아우가 이런 생각이었구나’ 반응이 왔죠. 완전하진 않았지만, 주민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오해도 조금씩 풀었어요.”

연천의 프로젝트가 무르익어갈 무렵, 댐이 건설되는 상류에 더 크게 수몰되는 마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포천 관인면의 교동마을이다. 이 마을은 이씨 집성촌으로, 한 집 건너 피로 얽힌 친척들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갈등은 이웃사촌이었던 연천보다 정도가 심했다. 각자의 입장을 들려주는 정도로는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수몰되는 땅만큼 무너져버린 주민들의 마음을 모을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때 슬래브지붕 사이로 초가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전부 현대식으로 집을 개조했지만, 유일하게 50년이 넘게 옛날 집을 고수하는 이수하·김영자 부부의 집이었다.

게다가 마을의 ‘어르신’이었던 이들 부부는 공동체의 반목이 못마땅하던 차였다. 작가들은 이들 부부에게 집을 해체하고 이주하는 곳에 복원해 마을박물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루가 다르게 갈등만 늘어가는 이 마을에 가장 오래도록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집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를 구심점 삼아 서로의 상처를 보듬자고 제안했죠. 다행히 어르신은 허락해주셨고, 이 집이 서 있는 땅의 이름인 도롱뇽길을 따 ‘도롱이집 이주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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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하·김영자 부부의 새집 집들이 행사 모습.
도롱이집 이주프로젝트는 2010년 시작해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문화살롱공의 작가뿐 아니라 이들의 취지에 공감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도롱이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한옥 전문가와 건축가들이 힘을 보탰고, 마을 동식물의 학술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식물 전문가들이 나서 식생조사를 실시했다. 사진작가와 영화감독들은 삶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하지만 문화살롱공의 노력이 모두 성공하진 못했다. 아직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새롭게 이주하는 곳에 친환경 생태마을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처음엔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나 지자체에서 수십억원의 지원금을 준다, 체험형 마을을 만들어라 등 외부의 바람이 불어오자 하나 둘 욕심에 끌려 포기했죠.”

박 대표는 그때를 회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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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하·김영자 부부의 친환경집 짓는 작가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잖아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죠. 몇 년을 들락날락하며 친부모만큼 정이 든 도롱이집 노부부와 이야기하던 중 아버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이주터에) 땅 분양받고 집 지어야 되는 데, 정부 보상금은 턱도 없고 아들놈한테 얹혀 살아야 하나. 그냥 나무로 조그맣게 집이나 지어야겠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선뜻 ‘아버님, 저희랑 같이 집 지어요’라고 약속해버렸어요.”

이주터에 도롱이집 노부부를 위한 집을 지었다. 볏짚을 활용했고, 황토를 깔았다. 친환경 자재만을 사용해 문화살롱공의 작가들이 6개월을 이른바 ‘막노동’ 했다.

집의 첫번째 기둥이 세워지는 날, 얼큰하게 취해 기둥을 바라보던 이수하씨는 박 대표의 손을 잡고 “우리가 갈 데가 없어 막막한데, 수 십 년을 같이 산 마을 놈들과 자식새끼들도 돈에 눈이 멀어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데…. 고맙네”라며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마을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던 도롱이집은 아직 복원하지 못한 채 자재와 설계도면만 남아 있다. 수십억원을 지원하겠다, 체험마을을 만들자고 했던 정부의 약속은 온데간데 없다. 새롭게 이주한 곳에는 아직 마음의 불씨들이 남아있고 균열의 틈은 완전하게 메워지지 못했다.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본인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죠. 우리 작가들도 문화예술을 통해 이들 주민의 갈등과 상처를 보듬고 문화예술계에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픈 의지가 있었고 그래서 긴 세월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만난 마을주민들도 마찬가지죠. 수 십 년 이어져 온 마을 공동체지만, 누군가 다 해주길 기다리고 외부의 지원에만 익숙해져 버린다면 공동체는 무너지기 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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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문화기록관에서 주민들의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는 관람객.
문화살롱공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기북부의 환경, 먹거리, 농업문화에 눈을 돌리고 있다. 여전히 교동마을의 역사 기록하기도 계속되고 있다.

좀처럼 예술이 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북부의 메마른 땅에도 미약하게나마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예술가의 집단이 지역에 눈을 돌리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줄기를 뻗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죠.”

비록 금이 간 유리그릇이지만, 공동체가 의지를 갖고 소중히 사용한다면 부서져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글=공지영기자·사진=유은총기자·문화살롱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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