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선생의 풍수테마기행·21] 양평 추읍산·여주 고달사지

봉긋이 부푼 산봉우리… 큰 인물 나겠구나

박상일 기자

발행일 2015-03-2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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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개군면 소재지 쪽에서 바라본 추읍산은 부봉의 형태가 뚜렷하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인물이 날 곳에서 인물이 나고、
흥할 수 없는 자리에서는 사라져 갈 뿐이네。



가까이 보면 산정상 잘린 ‘토체’ 형상
묘자리·집터 쓰면 명예·돈 불러 들여
신라때 창건 고려 전성기 대사찰 유적
골짜기 안쪽에 자리잡아 몰락 ‘흔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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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양평과 여주를 둘러보았지만, 중요한 두 곳을 건너뛰었다. 한 곳은 풍수가들 뿐 아니라 등산객들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 양평의 명산 ‘추읍산(趨揖山·583m)’이고, 한 곳은 고려시대 전성기를 누렸던 대형 사찰 여주 ‘고달사지’다. 두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이번에는 일부러 시간을 마련했다.

추읍산을 보기 위해 양평 개군면을 찾아간 날, 조금 덥다는 생각이 들 만큼 따뜻한 봄 날씨였지만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하늘이 야속했다.

하지만 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추읍산은 ‘용문산이 부럽지 않은 명산’이라는 평에 걸맞게 신비한 모양새로 취재팀을 맞아 주었다.

비록 용문산의 유명세에 밀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방 어디에서 보더라도 눈길을 끌어당기는 자태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추읍산은 또 다른 이름인 ‘칠읍산(七邑山)’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맑은 날 산꼭대기에 서면 일곱 고을이 내려다 보인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죠. 다시 말하면 양평 일대 일곱 고을에서 볼 수 있는 산이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추읍산 정상에서 보이는 고을이 양근, 지평, 양주, 여주, 이천, 광주, 장호원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가까운 양평이나 여주는 물론 멀리 이천이나 광주 쪽에서도 추읍산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산이라고 할 수 있죠.”

개군면 소재지를 지나 추읍산 쪽을 향해 가니 도로에서 산의 모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워낙 여느 산들과 달라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구별해 낼 수 있을 듯하다.

개군면 소재지 쪽에서 보이는 모양은 정말로 잘 생긴 부봉(富峰)이다. 마치 둥근 밥공기를 엎어 놓은 듯 둥글게 솟아오른 모양은, ‘일부러 만들지 않고 어떻게 저절로 저렇게 됐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추읍산은 이쪽에서 보면 영락없이 예쁜 부봉이지만, 가까이 가서 볼 때와 다른 쪽에서 볼 때에는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요. 내리 쪽으로 들어가 추읍산 아래까지 가서 올려다보면 산정상 부분이 잘려지면서 토체를 이뤄요. 그리고 양평 방향으로 멀리 나가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등장하는데, 하나하나가 감탄할 만한 모습들이에요.”

개군면 쪽에서 추읍산을 바라보며 가다가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내리 쪽으로 들어갔다. 내리 쪽은 추읍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산행의 출발점으로 많이 삼는 곳이다. 내리 일대는 산수유가 많아 매년 4월 초에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내리 마을을 향해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가며 풍광을 감상하는데 조광 선생이 잠시 차를 멈추게 한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아담한 벽돌집이 한 채 서 있다. 잘 관리를 하는 듯 깨끗하고 단정한 모양이지만, 전형적인 시골집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 평범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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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고달사지 전경. 4만㎡ 가 넘는 넓은 절터에는 옛 영화를 증명하듯 고달사지 원종대사 탑비(보물 제6호), 고달사지 석불대좌(보물 제8호) 등이 커다란 석조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조광 선생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현역 정치인의 집”이라며 “인물이 충분히 배출될 좋은 자리에 집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자세히 보니 그야말로 풍수의 정석에 딱 맞는 집터다.

뒤로는 위압적이지 않은 조그만 언덕이 주산(主山)이 되고 있는데, 영상사를 이루며 좋은 기운을 내려보내고 있다. 앞쪽은 살짝 비탈져 내려와 훤히 트였고, 좌청룡·우백호가 길게 뻗어 내려오다가 안쪽으로 감아들어 돈과 명예를 모두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딱 그 한가운데에 집이 지어졌으니, 보통 안목으로 집자리를 잡은 게 아님을 짐작케 한다.

“이 집은 추읍산 자락이 길게 내려 뻗은 끄트머리에 자리해 있어요. 그야말로 추읍산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죠. 북동쪽 방향으로 추읍산이 한눈에 보이는데, 아주 예쁜 부봉의 모습이어서 이 집의 주인은 평생 재물 걱정이 없을 것 같아요. 게다가 집 앞에 청룡이 기가 막히게 휘감아 들었으니, 명예 또한 타고 난 셈이지요. 결국 이곳에서 큰 정치인이 나왔으니, 인물이 나올 곳에서 인물이 나온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사례가 되겠네요.”

한참 동안 추읍산과 집터에 대한 칭찬을 이어가던 조광 선생은 끝머리에 아쉬움을 살짝 붙인다.

“그런데, 추읍산이 뛰어난 반면 주변의 산들은 영 모양이 나오지를 않아요. 울퉁불퉁하고 바위가 많고 삐죽삐죽 솟은 산들이 추읍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죠. 결국 추읍산이 이 주변에서 유달리 도드라지고 있는 모양새인데, 이런 곳에서는 큰 인물이 나오되,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주변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하고, 남과 어우러지기 보다는 자신의 뛰어남을 강조하는 사람이 나오는 형국이지요.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지만, 추읍산이 주변과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고도 아쉬운 부분이에요.”

내리 마을을 가로질러 추읍산을 오르는 좁은 길로 쭉 들어가자 바로 눈 앞에 추읍산의 본체가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이쪽에서 보는 추읍산은 산 정상이 똑바로 잘려나간 ‘토체’ 형상이다. 토체가 있는 곳에 음택(묘)이나 양택(집)을 쓰면 높은 사람을 상대하게 된다고 하니, 곧 명예를 얻게 된다는 의미다.

추읍산의 또 다른 모양을 보기 위해 개군면 쪽으로 나와 양평시내쪽으로 차를 달렸다. 신내해장국으로 유명한 공세리에서 동쪽을 향해 뒤돌아 추읍산을 바라보니, 남쪽 개군면 소재지 쪽에서 바라보는 모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며 낮아지다가, 북쪽 편에서 살짝 다시 솟아올랐다.

조광 선생은 “코끼리가 엎드린 모습”이라고 했다. 과연 북쪽을 향해 잔뜩 엎드린 코끼리 모양이다. 아마도 이 모양을 두고 추읍산이 용문산을 향해 절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 듯 하다.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추읍산을 살펴보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서둘러 여주 쪽으로 넘어가 고달사지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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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복원돼 제모습을 찾은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고달사지(高達寺址·사적 제382호)는 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대사찰 고달사의 터다.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폐사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폐사 시기와 이유가 베일에 싸여있다.

전성기 때의 위용을 짐작하게 하는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 고달사지 원종대사 탑비(보물 제6호),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보물 제7호), 고달사지 석불대좌(보물 제8호) 등 귀중한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지난해 10월에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던 원종대사탑비의 비신을 복원해 당초 모양대로 탑비를 세워놓았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대사찰의 터여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조광 선생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한탄을 한다.

“아이구… 완전히 골짜기에 절을 지었네요. 오래된 사찰들이 대부분 풍수를 잘 보고 터를 잡았는데, 이곳은 어째서 이렇게 터를 잡았는지 모르겠네요.”

조광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달사지는 좌우가 넓기는 하지만 영락없이 골짜기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골이 진 곳에는 양택이든 음택이든 써서 좋을 것이 없다.

“주변의 산들도 둘러보니 좋지가 않네요. 일단 눈에 들어오는 영상사나 토체 같은 좋은 산이 없어요. 게다가 풍수에서 좋지 않게 보는 규봉(窺峰)이 여럿 보이니, 늘 좋지 않게 넘보며 해하려고 하는 세력이 있었다고 봐야겠네요. 아마 이런 이유로 나쁜 일을 당해 폐사를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고달사지를 둘러보면서 지난번에 살펴 보았던 신륵사가 떠올랐다. 풍수적으로 명당의 조건들을 잘 갖춘 곳에 자리를 잡은 신륵사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사찰로 이름을 빛내고 있다.

반면 더 크고 번창했던 양주 회암사나 여주 고달사는 이렇게 몰락해 흔적만 남은 모습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지나간 역사인 것을…. 취재팀은 “풍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사람이 이를 모를 뿐”이라는 조광 선생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아쉬움 속에 발길을 돌렸다.

/글·사진=박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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