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18개월 자격 정지 박태환 도핑 파문

물밑서 살린 올림픽 불씨
수면위 싸움 끝나지 않았다

임승재 기자

발행일 2015-03-26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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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영사 새로 쓴 마린보이 위기
소속팀 인천시청 재계약 힘든 상황
국제수영연맹 징계 한고비 넘었지만
국가대표 선발 규정 탓 ‘출전 불투명’
‘이중규제’ 뒤집을땐 ‘특혜시비’ 우려
비난 여론·체력 문제는 극복할 숙제

‘마린보이’ 박태환(26)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호령했다. 수영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수영 스타가 나온 것이다. 박태환이 물살을 가를 때마다 그렇게 한국 수영사는 새로 쓰였다.

박태환이 내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도전을 선언한 이후 도핑 파문이 불거지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수영계와 그의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소속팀이던 인천시청과의 재계약을 추진하던 중이기도 했다.

국제수영연맹(FINA)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박태환을 상대로 도핑위원회 청문회를 개최한 뒤 18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안도와 탄식이 교차했다. 수영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은 박태환이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굴곡의 수영 인생

박태환은 지난해 9월 23일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8초33으로 중국 쑨양(3분43초23), 일본 하기노(3분44초48)에 이어 동메달에 그쳤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을 가득 메운 관중석에선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전광판 기록을 멍하니 바라보던 박태환은 고개를 떨구었다.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은 라이벌 쑨양이 눈시울을 붉히던 관중을 향해 박태환의 손을 힘껏 들어 올리자 응원의 박수와 함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박태환은 이 경기를 비롯해 기대했던 종목에서 연이어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당시 경기 직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박태환은 풀이 죽어 있었다. 애써 웃음을 짓던 그는 취재진에 “힘에 부치네요. 저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 지라…”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의 이름 석 자가 국민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된 것은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다. 당시 경기고 2학년생이던 박태환은 자유형 200m·400m·1천500m에서 금메달을 쓸어담았다. 한국에 걸출한 수영 선수가 탄생했음을 전 세계에 알린 대회였다.

박태환은 거침없이 물살을 갈랐다. 이듬해인 2007년 호주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출전한 3개 종목 모두 결승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자신의 건재함을 전 세계에 다시 입증해 보인 대회는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자유형 100m·200m·4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개 대회 연속 3관왕의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인천시는 아시안게임 흥행을 위해 지난 2013년 3월 박태환을 영입했다. 게다가 일부 반대 여론에도 그의 이름을 딴 수영장 간판을 내걸었다. 박태환은 비록 3개 대회 연속 3관왕이란 애초 목표는 못 이뤘지만,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를 따내며 한국 선수 아시안게임 개인 통산 최다 메달이란 새기록(20개)을 세웠다.

# 인천시청 소속 박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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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이후 박태환의 은퇴가 점쳐졌다. 하지만 박태환은 내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도전을 선언했다. 소속팀인 인천시도 반기는 듯했다.

선수 계약이 한창 이뤄지던 지난해 말 인천시체육회에서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태환과는 무조건 재계약한다”는 분위기였다. 박태환이 결국은 인천에서 은퇴할 것이란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하지만 도핑 파문이 불거지며 박태환과의 재계약 추진은 전면 중단됐다. 시체육회 한 관계자는 당시 “박태환과의 재계약을 추진하던 시점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당혹스럽다”면서도 징계 수위를 지켜보고 재계약을 추진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번 징계로 박태환은 인천시청 소속으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까지 모두 박탈당했다. 한국 선수 아시안게임 개인 통산 최다 메달이란 기록도 지워졌다. 또 18개월 동안 자격정지를 받게 되면서 박태환은 이 기간 전국체전을 비롯한 모든 국내외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시체육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아쉽지만 박태환과는 작별해야 하는 상황이다”며 “게다가 인천시 재정난과 맞물려 고액 연봉인 박태환을 데리고 있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직 해결이 안된 박태환재단 설립이나 박태환 이름을 딴 수영장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박태환, 기로에 서다

수영계 안팎에선 FINA가 내린 18개월의 자격정지는 전례를 비춰볼 때 그간 “고의성이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해온 박태환 측의 입장을 십분 고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다행인 것은 내년 8월 열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전에 징계가 풀려 대회 출전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이다. 박태환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징계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소변 샘플을 채취한 지난해 9월3일부터 2016년 3월2일까지가 징계기간이다.

하지만 박태환이 명예회복을 위해 올림픽에 나서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결격사유) 6항에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박태환의 올림픽 진출은 물거품이 된다. 이 때문에 ‘이중 징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가 지난해 7월 마련한 규정을 특정 선수를 위해 뒤집으면 ‘특혜 시비’ 등이 일어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그랬듯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을 향한 불편한 시선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스스로 인정했던 체력적 한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박태환 소속사 측은 조만간 이번 도핑 파문과 관련한 공식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박태환은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까.

■박태환 주요경력

2006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MVP(자유형 200m·400m·1,500m)
2007
멜버른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 금메달, 자유형 200m 동메달
프레올림픽 ‘2007 일본국제수영대회’ 자유형 400m 금메달·1,500m 동메달
호주 시드니 국제수영연맹 경영 월드컵 3차 자유형 200m·400m·1,500m 우승
2008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 자유형 200m 은메달
2009
자넷에반스 인비테이셔널 수영대회 남자 자유형 200m·400m 준우승
2010
뉴사우스웨일스스테이트오픈 자유형 100m·200m·400m 우승
펜퍼시픽수영선수권 자유형 400m 금메달·200m 은메달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자유형 100m·200m·400m)
2011
상하이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 금메달
2012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은메달, 자유형 200m 공동 은메달
2013
인천시 수영부 입단(현)
제94회 인천전국체전 4관왕(자유형 400m·계영 400m·자유형 200m·계영 800m)·혼계영 400m 동메달
2014
빅토리아오픈챔피언십 자유형 100m 은메달·200m 금메달·400m 금메달
NSW(뉴사우스웨일스) 스테이트오픈 자유형 400m 우승·100m 3위(한국신기록 48초42)
인천 아시안게임 자유형 100m 은메달, 자유형 200m·400m 동메달, 자유형 계영 400m·800m 동메달(박탈 결정)

/임승재기자
사진·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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