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영화로 읽는 역사

신데렐라는 왜 밤 12시전까지 와야 했을까

‘신데렐라’ 2015년, 케네스 브래너 감독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2015년, 샘 테일러-존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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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영 작가
이번 ‘신데렐라’는 페로 동화를 바탕으로 한 1950년 작 애니메이션과 달랐다. 그림동화의 신데렐라인 ‘아셴푸틀’을 반영해 친어머니의 유훈을 기억하고 꿋꿋이 사는 신데렐라를 보여주었다. 신데렐라 유형 이야기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다양한 판본으로 약 1천종이 있다. 하지만 디즈니애니메이션 때문에 신데렐라는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의존적이고 나약한 여자로 오해받는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 여주인공을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연 ‘신데렐라’는 여자가 결혼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만이 주제일까?

‘백마 탄 왕자’가 구해주고 결혼하는 여성들은 누구인가? 백설공주, 잠자는 공주, 왕자와 결혼하기에 문제없는 신분인 공주들이다. 반면 신데렐라는 평민이다. 이번 실사 영화에 잘 나와 있듯, 왕자와 결혼하기 어려운 신분이다. 이런 여성에게 왕자가 관심을 가져 순수한 사랑을 나누다가 결혼에 이를 확률은 거의 없다. 일부일처제를 규정한 기독교의 영향으로 유럽 왕실은 후궁이나 하렘을 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왕실의 남성들이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아내에게 평생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실적 이익을 따져서 결혼할 여성과 성적 만족을 얻을 여성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기에 평민 여성이 사냥이나 영토 시찰 중인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것은 왕자비 아닌 첩이 될 기회를 만난 것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이 사실을 대놓고 기본 설정으로 삼은 현대판 신데렐라 영화다.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에게 사랑을 원한다. 성공한 사업가인 그레이는 계약서를 들이민다. 그녀를 방에 가두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학대하려 든다. 옛날 왕자들이 평민 여성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여기던 역사적 사실과 다를 바 없다.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는 말한다. 밤 12시 전까지 돌아오라고. 이 말의 의미는 뭘까? 가톨릭의 신앙 후견인인 ‘대모(代母)’는 엄마를 대신하는 존재다. 엄마들이 데이트하러 외출하는 딸에게 하는 말은 늘 ‘일찍 들어와라. 몇 시 전까지 들어와라’이다. 밤 12시, 자정을 전후해 날짜는 바뀐다. 그렇다면 자정까지 돌아오라는 요정 대모-엄마의 당부는 왕자와 밤을 보내지 말라, 섣불리 성관계를 갖고 왕자의 첩이 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발레 ‘지젤’에서 농민의 딸 지젤은 사냥 나온 영주의 아들 알베르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알베르트는 지젤에게 자신의 신분을 속인다. 약혼한 공녀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사실을 알게 된 지젤은 충격으로 사망, 독일판 처녀귀신인 빌리가 된다. ‘지젤’은 독일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설화는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역사다. 실재 역사에서 ‘백마 탄 왕자’를 만난 평민 여성의 이야기에는 이런 슬픈 결말이 더 많았을 것이다. 결혼해서 왕자비가 되는 해피엔딩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설화를 즐기는 민중들은 신데렐라를 왕자와 결혼시킨다. 하룻밤 성적 노리개로 이용되고 버려지거나 첩살이할 처지에 있는 평민의 딸이 고귀한 왕자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평민도 왕자와 대등한 존재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참 왕자가 달아올랐을 때 뿌리치고 가버리는 신데렐라와 아나스타샤는 보여준다. 우리는 너희의 편의를 위해 이용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신분 재산 권력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그러기에 나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놀라운 혁명성을 발견하고 늘 감탄한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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