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와 죽은자,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박현수

발행일 2015-04-14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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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현정부 실세들 거론된 56자 메모 ‘성완종 리스트’
당사자 부인할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 밝혀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故事 교훈 새겨야


성완종 리스트로 온통 시끄러운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문득 이런 얘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왕조사를 기록한 십팔사략의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地知子知我知)’는 고사(故事) 말이다. 환관의 횡포와 탐욕으로 뇌물이 성행했던 후한 시대에 청신(淸臣)으로 꼽히던 양신이란 관리가 있었다. 그가 제법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군수(郡守)가 됐을 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은 많고 권력에 줄 대기 좋아하는 세태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군의 하급관청인 현의 현령이 승진청탁을 위해 한밤중에 몰래 많은 금품을 가지고 와서 양진에게 건네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받으라는 의미였겠지. 그러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고 꾸짖으며 금품을 물리쳤고 말문이 막힌 현령은 부끄러워 사죄하고 그대로 물러갔다는 것이다.

세상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비밀은 없다는 교훈이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벽에도 귀가 있다(Walls have ears)’라는 경구가 있다.

자원외교 비리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생을 마감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현 정부 실세들의 이름이 기록된 56자의 메모와 죽기 직전에 모 신문과 진행한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세간의 여론은 죽음을 결심하고 남긴 메모와 인터뷰에 설마 거짓이 있을까 라며 신빙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론도 한몫 거들고 있다. 거론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터무니없는 얘기, 황당무계한 소설 같은 시나리오로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단돈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의 진까지 치면서 말이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파문은 커지고 있고 후유증도 깊어질 조짐이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을까. 검찰 역시 특별수사팀을 가동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모든 의혹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사건을 폭로한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남은 건 56자의 메모와 언론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녹취록뿐이다. 사건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들을 어느 구석에 보관해 놨는지, 있다면 그걸 확보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검찰은 칼을 빼 들었다.

국민들은 망자가 남긴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검찰이 밝혀내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명쾌하진 않을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진실에 접근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우려스러운 건 이런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항상 뒷말이 남았다는 점이다. 후유증이 꼭 있었다는 얘기다. 어떻게 정리되든 미진한 구석은 있게 마련이다. 최선을 다한 수사라도 정치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금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부딪치는 것이다.

당사자들도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혀야 한다. 언론 역시 진상규명에 필요한 일이 있다면 협조해야 한다. 국민들도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나무라지만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 역사를 되새김질해보면 어떤 나라든지 돈과 관련된 추문들은 항상 있어 왔다. 그럼에도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자정기능 덕분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고 태양을 피한다고 빛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진실은 지금은 가려질지 몰라도 언젠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후세를 경계할 것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고사의 교훈은 현재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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