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이념 양극화에 대한 오해

959621_521000_4123
▲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보수·진보 갈등, 유권자 의식 성숙해졌다는 의미
상대방 정책 부정적 평가 민주정치 발전 도움 안돼
서로다른 생각 이해하고 타협하는 관대함 보여야


현재의 한국 정치를 부정적으로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은 지역주의와 이념 양극화일 것이다. 지역주의의 병폐와 해악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념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오해와 혼란이 있는 듯하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중요해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이념 갈등이 부상하면서 지역 갈등이 한국 정치에서 누리던 독점적 영향력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초창기의 이념 갈등은 오히려 긍정적 시각에서 해석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이념 갈등이 이념 양극화 현상으로 표현되면서, 지역주의에 버금가는 한국 정치의 병폐로 묘사되고 있다.

먼저 이념 갈등 그 자체는 결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회에서의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어떠한 갈등이든 그것이 표출되지 않고 숨어있는 것보다는 표출되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의 신호다. 특히 사회의 다양한 갈등 중에서도 이념 갈등은 다른 갈등에 비해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지역 갈등이나 세대 갈등과 비교해 볼 때 이념 갈등은 타협점을 찾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영남과 호남이 대립할 때는 중간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충돌할 경우 양쪽의 입장을 균형 있게 대변해 주는 세대를 발견하기 어렵다. 반면 보수-진보 간의 갈등에서는 얼마든지 정책적 타협이 가능한데, 그것은 보수와 진보가 기본적으로 연속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념 갈등이 다른 갈등에 비해 바람직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정책에 대한 입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가 특정한 이념성향을 가진다는 것은 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선호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유권자는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선호하고 진보적 유권자는 성장보다는 환경보호를 위한 정책을 중시한다. 따라서 많은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분명히 나누어지고 대립한다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보다 민주정치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에서 보수-진보 이념 갈등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균열로 자리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념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표현이 중도 혹은 중도실용주의다. 그런데 중도란 분명한 이념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을 관용하고 이해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나 입장 없이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중도실용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중도 정치세력은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을 부정하는 독선에서 벗어나 관용과 타협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이다.

만약 한국에서의 이념 갈등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보수-진보 간 타협이 선진 민주국가에 비해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 갈등이나 양극화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양자 간 타협이 한국에서 잘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이념 갈등이 가지는 특수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이다. 반공, 친북과 연계되면서 이념 갈등은 타협 가능한 정책적 대립보다는 타협이 어려운 감정적인 대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특수성은 이념 갈등이 세대 갈등과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결과,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기성세대와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신세대 간에 가치관의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이념 갈등과 중첩되어 기성세대는 보수,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이념 갈등이 세대 간에 존재하는 기본 가치관의 차이와 결합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다.

서구 민주국가에 비해 한국 유권자가 이념적으로 더욱 분극화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 양극화를 내세우며 유권자가 분명한 정책적 입장을 가지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결코 한국 민주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을 없애는 일이 아니고, 서로 다른 이념을 관용하고 타협하는 성숙함이다. 이러한 성숙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