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물에 그 밥

이한구

발행일 2015-04-22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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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세계 장수기업들 CEO 검증작업 무척 엄격
오너들도 회사를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아
물려받은 기업 건강하게 키워 후세대로 물려줘야

지난달 말에 일본 N경제신문의 K기자가 오랜만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조현아 파문으로 물의를 빚었던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 참관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나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K기자의 야릇한 미소까지 감지되었다.

조현아부사장 건으로 기업가치 훼손이 심각해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질타가 당연함에도 정작 주총에선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소액주주 한명이 따지고 들다 주최 측의 제지로 흐지부지 된 것이 고작이다.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은 50%나 인상되었으며 구설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던 장남 조원태 부사장은 3년 임기의 사내이사에 재선임되었다. 경영진 문책은커녕 오히려 상(?)을 주어 격려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K기자의 질문에 잠시 주저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는 자칫 양국 간의 국익(國益)문제가 대두될 수 있어 조심스러운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한일관계가 미묘한 상황에서 일본의 ‘대표’ 신문에 한국 ‘대표’ 기업의 경영행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야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니 말이다. 낮 뜨거운 질문이란 판단에 K기자가 얄밉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은 땅콩회항사건을 한국재벌 특유의 족벌세습경영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관리자본주의도 정답은 아니다. 193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시장을 지배했던 전문경영인체제는 과거의 오너경영시대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업이 성장하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아돌프 벌리(Adolf Berle)의 라이프사이클이론에 의문이 드는 것이다. 반면에 앤더슨(Ronald Anderson)과 리브(David Reeb)는 가족기업의 성과가 비가족기업보다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족기업이 더 발전할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다. 세계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호시료칸(法師旅館)을 비롯한 세계 대다수 장수기업의 세습경영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씨왕조의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해서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존속했다. 1천년 역사의 로마제국과 1299년부터 1922년까지 623년 동안 유지했던 터키의 오스만제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이다. 조선의 스파르타식 세자교육 프로그램인 서연(書筵)이 주목된다. 세자들은 일년 내내 하루 종일 강도 높은 제왕학 교육을 받았다. 아침수업인 조강(朝講)부터 주강(晝講, 오전수업), 석강(夕講, 오후수업)은 물론이고 요즘 고등학교 ‘야자’에 해당하는 야대(夜對)수업까지 받느라 예비권력자들은 늘 잠이 부족했다. 수시로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못미치면 비록 장자라 하더라도 왕이 되지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났다. 역대 27명의 왕 중에서 장자가 왕이 된 경우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등 총 7명에 불과하다. 군주들은 왕자의 인성교육에 각별히 공을 들인 것이다.

세계 장수기업들의 CEO 검증작업은 무척 까다롭다. 경영자로서의 기본소양은 물론 국민으로서의 의무 이행 유무가 주요 체크포인트이다. 금융재벌 로사차일드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반드시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 또한 장수기업 오너들은 기업을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주주가치보다 기업의 영속성과 화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건강하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알파와 오메가’인 것이다. 스튜어드쉽(청지기정신)이 각별히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국내적으로 환갑을 넘긴 기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경영권이 창업 3, 4세대로 넘어가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부자는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속설이 동서고금의 진리인 탓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부(富)가 3대까지 유지되는 비율은 10%에도 못미친다. 창업 3세(世)까지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은 14%정도이다. 10대 경제대국 타령이 민망하다. 해외언론들이 조소(嘲笑)하는 해프닝은 더 이상 없어야할 텐데.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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