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의 정치, 망각의 정치

최창렬

발행일 2015-04-2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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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여야, 재보선 의식 성완종수사 물타기 의도 감지
박대통령 입장 정국향배 가늠할 분수령될 것
청와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

현실의 정치공간에서 국면전환은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 쟁점도 태풍처럼 특정 지점에서 발생하고 소멸하는 경우도 있고, 서서히 에너지를 규합하면서 확대 재생산되어 다른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기도 한다. 한 이슈가 정치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고 모든 사회적 현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다른 이슈로 빠른 속도로 대체된다. 그리고 블랙홀은 이내 소멸하고 만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블랙홀의 정치요, 망각의 정치다. 아무리 메가톤급 이슈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국면전환을 위한 정치공학이 동원되기도 하고, 권모술수와 책략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그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일제시대와 해방 공간,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분석하고 한국 정치의 본질을 정치권력을 향해 몰려드는 소용돌이로 파악했다. 블랙홀의 정치와 망각의 정치가 다이내믹스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정치는 소용돌이 정치로 귀착된다. 이는 한국 정치를 불가측의 정치로 귀결시킨다. 헨더슨은 해방 공간의 혼란을 분석했지만 지금의 정치공간 역시 당시의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점차 성완종 전 회장의 노무현 정부 말 특별사면 국면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여권의 ‘국면전환’이 어느 정도 약발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이 이루어진 기간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는 기억하는 인물도 없고 아무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이 사안이 지루한 소모적 정치적 쟁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인 이유이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지 2주가 넘었지만 성완종 전 회장의 측근들을 구속한 것 이외에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정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인사에 대해서도 수사의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하던 ‘성완종 파동’은 ‘진압’ 국면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블랙홀의 정치가 망각의 정치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다이내믹스 그 자체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다른 사안으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새누리당이 성완종 특별사면에 대한 검찰수사 촉구와 국정조사 검토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이라면 이러한 추론은 더 구체화한다. 여야가 재보선을 의식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의 관점에서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본래 정치는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면 된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국면을 여야, 정치권 전반에 대한 정치개혁과 수사의 단초로 삼겠다고 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과 수사확대의 당위성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측과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은 측을 같은 비중과 무게로 다루고 있는 오류 때문에 당위성은 현저히 권위와 신뢰를 잃는다.

새삼 한국 대통령제의 숙명인 집권 3년차 징크스를 거론하지 않아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시점은 국정 동력 회복이냐 리더십 상실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시기다.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을 구체적 해법과 입장의 수위가 재보선 결과와 함께 향후 정국의 향배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성완종 정국이 ‘블랙홀’에서 ‘망각’으로 매번 진화하는 한국 정치의 패턴을 또 한 번 일반화하는 전철을 밟을지, 사회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진정한 국면전환의 단초가 될지는 이제 청와대에 달려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이다. 한국 정치도 망각의 정치 늪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기 때문이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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