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70 로체원정대] 가족 앗아간 ‘공포의 지진’… 코리안드림마저 무너지다’

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5-05-06 제1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964657_526363_5020
▲ 김포의 가구 공장에서 8년여 동안 일하며 돈을 모아 고향에서 터를 잡아 살아온 카숄씨가 4일 오전(현지시간) 지진으로 무너진 네팔 카트만두 외곽 시타파일라 마을 건물더미에서 가족사진을 찾아 꺼내고 있다. /김종화기자
카트만두 외곽마을 키숄씨
김포 가구공장 8년 생활
악착같이 돈 모아 귀국
3층 집 짓고 행복했는데…
여동생·조카등 잃고 참담

964657_526364_4939
“한국에서 번 돈으로 새 집 짓고, 겨우 온 가족이 모여 살게 됐는데….”

4일 오전(현지 시간) 카트만두 외곽의 시타파일라 마을.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가재도구와 옷가지를 챙기던 키숄(39)씨는 한국에서 온 로체원정대를 만나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키숄씨는 지난달 25일 지진으로 3층 집 건물이 무너지면서 함께 살던 여동생과 두 조카, 2층에 살던 친구 어머니가 숨지는 참변을 겪었다.

악몽 같았던 지진이 발생한지도 열흘이나 지났지만, 키숄씨의 아버지는 여전히 가족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임시 거처를 마다한 채 집 앞 공터에 텐트를 치고 지내며 매일 건물 더미만 지켜보고 있다.

키숄씨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마을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룬 청년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샀다. 20대 중반이던 지난 2002년, 가족들을 책임지겠다며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간 키숄씨는 김포의 가구 공장에서 8년여 동안 일하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쥐고 귀국, 2년 전 온 가족의 숙원이던 3층짜리 집을 지었다.

한국생활 중 배운 한글과 한국어 실력을 살려 통역 겸 관광 가이드로 자리를 잡으며 지난해에는 늦장가를 가 두달여 전 예쁜 딸까지 얻었다. 지진 당일에도 한국인들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가이드를 위해 포카라에 머물고 있었다.

키숄씨는 “이 집은 내 젊은 날의 전부이자 온 가족의 터전이었지만, 이제 모든 게 무너져 버렸다”면서도 “가장이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애써 지어보인 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걱정은 태산이다. 바로 이달 말부터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키숄씨는 “여러 나라들이 구호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꿈을 이루게 해줬던 한국의 지원이 유난히 고맙고 반갑다”며 다시 건물더미로 발길을 옮겼다.

■장비지원 :트렉스타, 몽벨, 쿠베

/김종화기자

김종화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