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는 인간’과 이야기의 본질

김창수

발행일 2015-05-13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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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는 ‘이야기의 힘’
스토리텔링이 왜 대세인지 생각해 봐야
양방향 소통 환경속에 ‘본질’을 지녔기 때문


인간에 대해 새로운 정의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이 그것이다. 이야기 하기와 이야기 듣기, 이야기를 통한 소통이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이 정의는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인 존 닐(John Niels)이 처음 제기한 신조어이다.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본 것이다.

이야기의 전승을 주목하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는데 바로 죽음을 무릅쓴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이다. 아랍의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千一夜話)’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랍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의 원제목은 ‘샤리아에게 들려주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이다. 샤리아는 왕비에게 배신당한 뒤 그 원한 때문에 매일 한 명의 여자와 동침하고 이튿날에는 교수형에 처하는 잔혹한 군주이다. 셰에라자드는 스스로 이 잔인한 군주와 결혼하여 천 하루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빠진 술탄은 교수형을 하루하루 늦추다가 천 하룻밤을 보낸 날 마침내 지혜로운 이야기꾼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동침한 여인들을 죽이는 악습도 폐지한다.

보카치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가족을 잃은 7명의 부인과 3명의 청년이 교외의 한 별장에 피신하여 지내는 열흘 동안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이들에게 이야기는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슬픔과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한 위안물이라 할 수 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꾼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거였고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남녀들에게 이야기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기록 서술자의 장치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경문왕과 복두(幞頭)장이 이야기’는 이와 흡사하다. 이 설화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복두장이는 경문왕의 귀가 나귀처럼 길어졌다는 비밀을 알고 있지만 평생 발설하지 못하고 죽을 무렵에 대나무 밭에 들어가 왕의 귀가 나귀처럼 생겼다고 소리치고 죽는다. 그 뒤부터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나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과 이발사’ 이야기도 거의 흡사하며, 유사한 이야기는 유럽과 아시아 전체에 분포한다. 미다스왕의 이발사나 경문왕의 이발사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없어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갈대나 대나무밭에다 말하고 죽는다. 이 유형의 설화는 외견상 비밀은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스토리의 관점에서 보면 비밀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털어놓지 못하면 고통스럽다는 사실, 역으로 이야기하는 행위는 쾌감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담겨 있다.

이야기의 시대로 접어든 징조가 뚜렷해 지면서 이야기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다. 교육과 출판 분야는 스토리텔링이 기본이다. 기업의 홍보 마케팅 분야도 이야기의 기법이 대세이다. 심지어 선거에서도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는 후보는 당선 확률이 낮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문예창작학과를 스토리텔링 학과로 바꾸고 있다. 국내외 도시들도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 마케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소설을 압도하게 된 배경, 왜 TV나 라디오 매체가 아닌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인터넷 매체나 SNS가 ‘대나무밭’이라도 되는 걸까? TV, 라디오, 책이 일 방향성이라면 인터넷과 SNS는 양방향성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야기는 양방향 소통 환경에서 서식하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이야기의 시대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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