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필요한 시대

이준우

발행일 2015-05-1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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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 전문대학원 교수
국회의원들은 여야 떠나
계류중인 많은 법안
빨리 논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눈물 흘리는 민초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이 해야할 책무 이기에…


편리한 세상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소통이 가능하다. 금융 결제며 각종 자료 수집도 어렵지 않게 척척 해낼 수 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이나 사고 소식은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스마트폰으로 움직여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부터 손에 드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사람들은 온통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 국민들만큼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불통’, 즉 ‘소통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얼마 전 야당의 최고위원회의 때에 드러난 막말과 퇴장, 생뚱맞은 노래, 빈정대며 쏟아내는 말들은 ‘불통’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여당과 야당,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간 소통의 부재로 인한 불협화음도 가히 요지경이다. 사회 지도층부터 소통이 안 되니까 가정과 개인도 소통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가 되고 말았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부부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진정성 있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은 소통 부재 사회다. 소통을 못 하니까 공감능력 또한 상실하고 말았다. 공감이 없어지니까 그 자리를 냉담함이 채우고 있다. 까칠하고 냉소적인 경향이 커지고 있다.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자기’라는 폐쇄회로 속에 확고히 갇혀 버린 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느라 분주하다. 아무도 서로를 향해 걷지 않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광장’의 인물들처럼 우리는 어딘가를 향해 가지만 누구를 향해 가지는 않게 되었다. 심지어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사랑마저도 사랑의 대상을 고통스럽게 한다. 최승호 시인이 ‘오징어 3’에서 한탄했던 내용이 현실이 되고 있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진정성이 결여된 소통으로 가득 찬 정보사회는 ‘존경’과 ‘배려’를 없애 버린다. 실제로 대한민국에 더 이상 존경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교수와 교사도, 종교인들도 과거에 비해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존경은 공공성의 초석을 이루는 핵심인데, 이렇게 존경심이 사라지면 공공성도 무너진다. 존경심은 또한 이름과 결부되어 있다. 익명성과 존경은 양립할 수 없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촉진되고 있는 익명의 소통은 존경심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며 조심성 없고 존중할 줄 모르는 무례한 문화를 확산시킨다. 이를테면 ‘악플’의 폭력성을 살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과 존경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름은 존재를 나타내는 유리창이다. 그래서 신뢰란 이름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책임을 지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또한 이름에 대한 신뢰로 출발한다.

디지털 시스템에 기초한 소통은 사랑의 접촉이 결핍된 기형적인 정보사회를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모니터를 통해 만나는 상대와 이 세계는 더 이상 온전한 대면이 아니다. 화면이라는 중간 매개체를 통해 만나는 접속에 불과하다. 그와 같은 접속에는 인간의 온기도 없고, 생생한 숨소리를 맡거나 들을 수도 없다. 단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를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가상 세계가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왜 우리가 그토록 애쓰고 노력해서 정보사회를 구축해 왔는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우리가 그토록 몰입해왔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신뢰와 존경이 디지털 매체에 의해 종속된다면 과연 행복할까? 더 이상은 안 된다.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기계는 공감능력이 없다. 공감이 있는 소통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을 사랑으로 연결할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 보자! 그러려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 아닌가? 제발 부탁드린다.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떠나 국민의 심정을 공감하고 제대로 만나서 소통해야 한다.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그 많은 법안을 조속히 논의하고 통과시켜야 한다. 공무원 연금도 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눈물 흘리는 민초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에서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는 반드시 해야 한다.

/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 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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