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 옆에 한 여자가 있다. 살해된 남자의 애인이다. 발끝에 걸리는 대로 끌고 나온 듯한 슬리퍼가 눈에 띈다.
여자는 서럽게 운다. 마치 그녀가 살인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무뢰한’의 오프닝은 사건의 발단이 되기도 하지만 결론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애초에 살인자를 잡는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보다는 그녀가 왜 슬리퍼 차림으로 그곳에서 서럽게 울고 있느냐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듯하다.
범죄의 단선적인 강렬함이 아니라 발끝에 걸쳐진 슬리퍼, 혹은 감정의 미묘하고도 다층적인 떨림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은 불편하다. 화면은 시종 어둡고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은 무겁다.
시궁창처럼 질퍽 이는 현실의 삶 속에서 너무 오래 뒹굴었기 때문일까.
언젠가 한 번쯤은 화려하게 사랑을 꽃피워봤을 이들은 마치 사랑하는 법을 잊은 사람들처럼 어리석고 서툴다.
그런 까닭에 범인을 잡기 위해 그의 애인 곁에 의도적으로 접근한 형사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단순해지지 않는다.
스토리 라인이 단순한 만큼 무뢰한은 감정의 복잡한 이면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
특히 살인자의 애인이자 술집 마담인 김혜경을 연기하는 전도연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수배 중인 애인을 불안감과 만남이 설렘, 더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재곤(김남길)에 대한 끌림 등을 특유의 감정연기로 소화해 낸다.
무뢰한은 짜임새가 부족해 보이는 이야기 전개와 나르시즘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인물에 대해 다소 과장된 묘사가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 어딘가에 놓인 감성을 끄집어내 관객에게 내민다. 인물들의 감정을 쫓아가다 만나게 되는 엔딩은 특히 인상 깊다.
오프닝의 무덤덤한 걸음과 달리 비틀거리며 힘겹게 어디론가 향하는 재곤의 롱 테이크는 긴 여운을 남긴다.
/이대연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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