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바람에 떨지 않으려면

이용식

발행일 2015-06-0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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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식 인천발전연구원 부원장
지역 문화와 인문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매년 오뉴월이면 10여 년 전 이맘때의 경험을 자주 떠올립니다. 북미 대륙에서의 긴 여행과 그 여정에서 제가 가졌던 여러 느낌에 대한 것들이죠. 혼자 자동차를 몰고 1만 ㎞ 이상의 길을 달리면서 여러 기억을 떠올렸고 그것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했던 일입니다. ‘이 동네에선 이렇게 도를 닦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그때 캐나다 대륙을 달리며 이렇게 도를 닦는(?) 기분으로 매일 주제를 정해 지금까지의 제 삶을 반추해보고 정리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날의 주제는 친구였습니다. 새벽부터 해를 안고 길을 달리며 저는 제 삶에서 친구란 무엇이었는지를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제 친구들이 누구였고 그들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 삶의 흐름과 함께 머릿속에서 그날의 주제에 천착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을 뛰어넘어 갑자기 한 친구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이 여행을 떠나오기 얼마 전 먼 거리에서 그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발적으로 제 머릿 속으로 진입한 이 친구를 찬찬히 기억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제대로 생각해보려 할수록 그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더 흐려졌고, 그러면서도 그것은 제게 무언가를 재촉하고 압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제가 아주 각별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그를 친구라 해서 선명하게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게 어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로서의 그의 의미는 제 삶에서 아주 묵직한 것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를 생각하기 시작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것이었고,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제 머리를 휘젓고 마음을 저리고 아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내내 저는 자꾸 흐릿해지는 눈으로 앞을 응시하며 빠른 속도로 북미대륙을 달렸습니다. 안치환의 ‘솔아솔아’를 부르며….

그는 구 년 전 이맘 때 쯤 이 세상에서 우리 곁을 떠난 박영근입니다. 노동시인이라 불렸고 진보적인 문예운동을 펼쳤으며 지역 문화운동에도 힘을 보탰던 그는 마흔여덟의 나이로 정말 치열하게 세상을 살다 간 친구로 기억합니다. 다섯 권의 의미 있는 시집을 냈던 그는 민중가요 ‘푸른 솔아’의 가사에 인용된 시구의 바로 그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역문화를 고민하던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몇 년을 정기적으로 만났고, 그렇게 생전의 오륙년 정도를 같은 연배의 친구로 지냈죠. 각별하진 않았지만 제겐 아주 묵직한 관계로….

요즘 그를 자주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유는 ‘문화’에 대한 고민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 이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게 맞는지를 따져 보면서, 그 친구를 부쩍 자주 생각하게 되었죠. 그의 삶이며 그의 시, 또 그 친구가 생전에 풀어냈던 지역문화에 대한 여러 주장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역 문화모임 후 뒤풀이 자리에서 그가 거침없이 토해냈던 언사들도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열기를 겪으면서 거기에 뒤섞여 이를 긍정적으로만 해석해대는 식자들의 논점에 통렬하게 일침을 가했던 그의 열변도 생각납니다.

문화와 가치는 제겐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문화는 인문적 가치와 같은 말이고, 이는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의미를 옳게 해석하고 스스로 그 삶을 실천하는 방식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삶과 실천을 공감하고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면서 따라 하게 된다면, 이는 지역의 큰 문화적 가치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인천의 문화와 인문적 가치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또 그렇게 문화자산으로 귀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북미대륙을 달렸던 일이 시인의 ‘샛바람에 떨지마라’는 외침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한 부끄러움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그래서 지역의 문화와 인문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일 역시 우리가 귀히 여겨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이해와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용식 인천발전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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