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광복 70년을 말하다·3] 문병대 삼성전자 前대표이사

우수 기술이 세계 제패… 부정부패 없는 창의적 사회돼야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5-06-02 제9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972221_534234_3243
▲ 문병대 삼성전자 전 대표이사가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수도권 발전은 곧 나라의 발전이며, 수도권 규제는 시대역행이다”고 밝히고 있다.
1969년 수원 삼성디지털시티 건설시작
68년 입사 17년간 수원근무 ‘제2의 고향’
‘혁신적 투자·공정인사·투명경영’ 핵심
日 소니 제치고 韓 ‘반도체 신화’ 이끌어
中 무서운 추격 경기도 첨단기술기지돼야
‘수도권 발전=나라 발전’ 규제는 시대역행
‘정직’이 가장 좋은 처세술 불변의 진리


972221_534238_3244
역사를 보면 기술이 우수한 나라가 세계를 제패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인재들이 전부 의대 법대 같은, 자격증 따는 데로 가죠. 하지만 앞으로는 창조적인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될 거예요. 사회 전체가 창의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직 너무 권위적입니다.

‘가장 빨리 가난을 벗어 던진 나라’. 세계는 우리나라를 이렇게 기억한다. 또한 이 사실은 우리의 자부심이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와 교육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원로에게 듣는 이야기의 두 번째 주제는 경제다.

문병대 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대표이사는 삼성에 뿌리를 두고 수원을 토대로 경기도 경제발전의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42년 동안 삼성그룹에서 일하면서 그가 직접 체험한 기업과 국가의 성장기를 들려주었다.

기업활동이 서울에 집약돼 있던 1960년대 말, 수원에 현재의 삼성디지털시티 건설이 시작됐다. 1969년의 일이다. 문병대 전 대표는 그보다 1년 앞선 68년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50여년이 지났지만, 푸르던 청년시절의 상황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전쟁과 5·16군사정변에 대한 기억과 상처가 가시지 않은 때죠. 경제와 정치계가 ‘재건’에 몰두하고 있을 때고요. 한일합섬, 선경직물 등의 섬유회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어요. 선경직물은 수원의 평동에서 조그맣게 사업을 시작했죠. 수원에는 그 말고는 딱히 산업이랄게 없었고, 농업인구가 대부분인 시골마을이었어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요.”

삼성이 시골마을 수원에 당시로서는 최첨단 산업이던 전자분야 사업의 터를 닦은 것은 한 정치인의 애향심과 고(故)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972221_534235_3243
“1963년 국회의원이 된 고(故) 이병희 전 의원은 수원의 발전을 위해 애를 많이 쓰셨죠. 경기도청을 수원에 유치하고 여러 기업체도 수원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했어요. 이 회장과 동기간으로 친분이 두터웠어요. 삼성전자 유치위원회를 만들고 땅을 사줄 테니 수원에 터를 잡으라고 권유했죠. 이 회장은 부지 45만평을 요구했어요. 그 분 꿈의 크기를 알 수 있는 거죠. 당시는 한 기업의 부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였어요. 이 회장은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생산 가능한 모든 공장을 한 곳에 집약할 수 있는 산업단지를 꿈꾸었죠. 당시 일본의 경쟁사인 산요가 도쿄에 40만평 부지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것보다 크게 짓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거고요. 수원 유지들이 적극 나서서 유치에 성공했지요.”

문 전 대표는 1983년 처음 수원에 왔다. 임원으로 승진하고 처음 발령받아 온 곳이 삼성전자였다. 이후 1999년 퇴직할 때까지 17년동안 수원을 떠나지 않았다. 임원이 한 곳에서 이토록 오래 일한 것은 삼성그룹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회장님으로부터 물류단지 부지를 매입하라는 특별 지시를 받고 수원에 왔어요. 처음에 수원공장 관리담당 이사로 왔는데, 당시에는 수원공장에 임원이 3명뿐이었어요. 인사, 총무, 경리 등 다양한 직무를 맡아서 했고, 경기도에서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역할도 해야 했지요. 대외 섭외나 교류가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니 중요한 자리였지요.”

그는 수원과 경기도의 도움이 없었다면 삼성전자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지역의 도움이 없으면 할 수가 없어요. 수도권 규제 때문에 기흥공장도 들어서지 못할 거였는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나서서 도와줬습니다. 물론 경기도도 도와주었고요. 반도체는 기술인력이 사업의 필수인데, 그 인력들을 모으려면 사업장이 수도권에서 가까워야 해요. 인프라도 중요하고요. 구도심밖에 없던 수원에 1984년 동수원이 조성되기 시작했어요. 수원 최초의 신도시죠. 이를 기점으로 수원이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지요. 그 이전에는 수원 진입로가 편도2차선이었어요. 삼성전자 삼거리 진입로에 8차선이 생길 때 무슨 길을 저렇게 넓게 내나 했는데, 지금은 그 길도 좁아졌죠.”

그가 수원에서 대표이사까지 오르는 동안, 삼성은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성장의 비결을 물었다.

972221_534236_4045
“삼성의 장점은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에요. 전문경영인은 그런 면에서는 힘이 없죠. 삼성은 오너가 경영을 했어요. 이 점이 지금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오너가 유능한 경우에는 최상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병철, 이건희 회장의 존재는 삼성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복이었어요. 우리가 일본의 소니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투자 결정이 주효했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책임문제 때문에 불황기에 투자를 못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일화를 말씀드릴게요. 반도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긍정적인 전망이 전혀 없었다고 해요.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이 회장은 반도체가 기업이 아닌, 우리나라를 위한 산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흥공장에 라인 하나를 설비하는데 500억원이 필요했습니다. 80년대 초반이니까 전체 이익이 200억원이었던 시절이에요. 반도체라인 설비 투자를 하면 기업이 흔들릴 상황이었죠. 실제로 부도설도 났었어요. 심지어 투병 중이셨는데 1987년 8월에, “내일 반도체 공장 기공식할거니까 삽 준비하라”고 지시하셨어요. 그리고 3개월쯤 후에 돌아가셨죠. 그 다음해인 88년 완공해서 그 해부터 지금까지 흑자를 내고 있어요. 그 분의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 역시 혁신적인 투자를 했죠. 이런 투자가 몇 번 성공해서 우리가 그들을 앞지를 수 있었던 거예요. 또 한가지는 공정한 인사시스템입니다. 삼성의 인사는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 승진하도록 시스템화돼 있어요. 매우 공정하고 한편으로는 매섭기도 한 인사죠. 청탁이 통하질 않으니까요. 세번째는 깨끗한 경영 풍토에요. 부정이 아주 없지는 않겠죠. 그러나 경영에 대한 정신이 살아있는 기업이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문 전 대표는 32년 동안 경기도에 있었다. 제2의 고향이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세월이다. 퇴임 후에도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육상경기연맹, 자원봉사단체협의회, 대한적십자사경기도지사 등을 이끌었다. 생의 가장 화려한 시간들을 경기도에서 보낸 그는 경기도의 미래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수원은 울산보다 큰 도시에요. 그런데 울산은 광역시고 수원은 아니죠. 경기도는 인구수로 서울을 앞질렀고, 우리나라 산업체의 3분의 1이 경기도에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서울을 능가하는 우리나라 제일의 지자체에요. 그런데 규제 또한 제일가죠. 다른 많은 나라들이 수도권 규제를 하다가 결국에는 수도권에 제일도시의 자리를 넘겨줍니다. 수도권의 발전이 나라의 발전과 직결돼요. 경기도는 첨단 기술기지가 돼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어요. 더군다나 중국이 무섭게 따라붙는 이때, 수도권 규제는 시대에 맞지 않죠.”

국가경제를 위한 제언도 남겼다. “옛날에는 미국 일본이 최고였어요.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도 많이 배웠죠. 지금은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우리는 중국을 넘어서야 합니다.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기술이 우수한 나라가 세계를 제패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인재들이 전부 의대 법대 같은, 자격증 따는 데로 가죠. 그래야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면서요. 하지만 앞으로는 창조적인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될 거예요. 사회 전체가 창의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직 너무 권위적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세계 경제 몇 위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부정부패가 심하죠. 이게 큰 걸림돌이에요. 경제만 죽어라고 애쓴다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거죠.”

그는 긴 이야기를 단순한 명제로 끝맺었다. 정직을 신조로 삼아 평생을 살았다는 그는 기업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직이 가장 좋은 처세술이라고 믿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우선 상사의 총애를 받아요. 대표이사를 할 때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기업은 소비자의 총애를 받습니다. 기업경영은 인간경영이고, 모든 경영은 인간이 하는 것이에요. 그건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700년 후에도 변함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일 것입니다.”

972221_534237_3244
■ 문병대 前대표이사 약력

▲ 1941년 충남 부여 출생
▲ 1967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68년 삼성그룹 입사, 47년 재직
▲ 1994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대표이사
▲ 2000~2006년 삼성전자 상근경영고문
▲ 1989~1999년 경기도육상경기연맹 회장
▲ 2004~2005년 경기도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장
▲ 1999~2007년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회장
▲ 2007~2013년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 2013~현재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고문

- 수상경력
▲ 1996년 대통령 산업포장
▲ 1997년 석탑산업훈장 수훈

- 저서
‘선진경제로 가는 길’

/글 =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 사진 =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민정주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