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30년 넘게 ‘독도는 우리땅’ 외쳐 온 ‘한민족 응원단장’ 정광태

우리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다면 권리 보장받지 못해

김민욱 기자

발행일 2015-06-10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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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가요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 정광태(60)씨가 독도는 명명백백한 우리 영토라며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고 있다. /김종택기자
■현충일 맞아 독도 다녀온 소감은?
매년 4~5차례 찾는데 매번 느낌 달라
어르신들 태극기 꺼내들때 가슴 뭉클
반짝 요란 말로만 하는 애국 반성해야

■국민가요 탄생 배경과 독도 인연은?
개그프로서 처음부른 뒤 정식 음반취입
홍순칠 대장이 ‘명예 독도군수’로 임명
출입통제 시절 해경초청으로 첫발 디뎌

■노래탓에 우여곡절도 많았을텐데…
5공 실세 과잉충성에 ‘방송정지’ 겪어
日비자 거부당해 대사관서 욕 퍼부어
50년쯤 일본 지배했으면 속시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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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이 최근 자신들이 주최하는 연례행사인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2월 22일)’ 기념식을 정부 행사로 승격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요망(要望)서를 중앙정부에 전달했다. 

요망서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를 일본 단독으로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우리로선 참으로 ‘요망(妖妄)’한 공문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이 대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돌섬 ‘독도’를 ‘죽도’라고 우길 때 마다 생각나는 노래가 바로 ‘독도는 우리땅’이다. 2분 25초의 짧은 곡이지만 일본이 허튼 짓을 할 때마다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응원가요, 국민가요다. 가수 정광태(60)는 맨 앞에 서 목청을 높이는 응원단장이 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9일 오전 응원단장을 자택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독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일본을 50년 이상 지배해봤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다”는 농 섞인 표현부터, “명명백백한 우리 영토인데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뭐라고 하겠는가”라는 진지한 표현까지, 그는 노래 가사 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현충일을 앞둔 지난 4일에도 독도를 다녀왔다.

“‘제2회 경기도민과 함께 하는 울릉도-독도 탐방 및 독도포럼 행사’ 참석차 다녀왔다. 경인일보 행사여서 이렇게 인터뷰까지 해주는 건가.(웃음) 독도 땅을 처음 밟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매년 4~5 차례씩 독도를 방문하는데, 매번 느낌이 새롭다. 독도 접안에 성공한 돌핀호에서 어르신들이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며 내리시는데 어느 순간 가슴 한 켠이 저려오기 시작하더니, 뭉클해졌다. 직접 보지 않고는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이다. 이 어르신들이 어떤 분들이냐. 아픈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부딪혀온 분들이다. 후손들에게 떳떳하려고, 부모된 도리를 다하시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독도 땅을 밟으신 것이다. ‘스스로 주장하지 않은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다’는 국제법 조항을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말로만 애국하는 이들은 고개 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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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애국자’들에게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마지막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는 패망 이후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조선인들은 (식민교육으로) 서로 이간질하며 싸울 것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이 독종 총독의 후손이 바로 현 아베 총리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냐. 무슨 때만 되거나 일본이 망언을 하면 반짝 요란을 떨다 이마저도 금세 사라진다. 말뚝 테러에 이어 또 다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심한 모욕을 줬는데도 흐지부지다. 실천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이한기 저, 한국의 영토 중)’는 문구를 되새겨야 한다.”

-많이 들어본 질문이겠지만 국민가요 ‘독도는 우리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1982년 당시 ‘유머 1번지’라는 KBS 간판 개그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씨 이렇게 4명이 포졸복을 입고 ‘독도는 우리 땅’을 코믹하게 불렀다. 이후 레코드 제작자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 넷이 약속장소로 나갔는데 제작자가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겨 왔다. 바빴던 나머지 3명은 이미 자리를 떴었고, 할일없어 혼자 남았던 나만 음반취입을 하게 됐다. 얼마 후 ‘젊음의 행진’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담당 PD의 주문으로 이순신 장군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신인 가수라 얼굴을 알려야 했는데,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다. (웃음) 하지만 다음 해(1983년) KBS 남자가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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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독도와 인연이 됐다고 보면 되나.

“맞다. 지금은 돌아가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1954년께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순시선을 총칼로 물리친 일화로 유명한 인물)의 초청으로 1983년 7월 25일 울릉도를 처음 방문했다. 홍 대장은 ‘이런 훌륭한 노래를 불러줘서 너무 고맙다’며 나를 명예 독도군수로 임명했다. 월급이 없는 명예직이다 보니 자르는 사람이 없어 지금도 독도군수를 장기집권하고 있다. 1984년 해양경찰청에서 초청을 받아 독도 땅을 밟게 됐다. 지금이야 접안시설이 있어 선박들이 닿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이라 접안시설 자체가 없었다. 독도 최초 주민이었던 고(故) 최종덕 할아버지의 작은 배로 옮겨탄 후에야 겨우 독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경에서 환영의 의미로 예포를 발사했는데 이 같은 예우를 받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독도 근해에서 최 할아버지의 아들, 딸, 그리고 어부 7∼8명이 작업 중이었는데 이 같은 독도의 산 역사를 아는 인물도 드물다. 그때 미력한 힘이나마 독도에 보태겠다는 다짐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정광태는 2000년 독도수호대원들과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뗏목 탐험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울릉군청에서 위험하다며 만류해 독도 근해까지 배에 연결해 이동해야 했지만 ‘뗏목 퍼포먼스’로 독도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다음에는 수영으로 독도를 종단했다. 

2004년 울릉도에서 출발해 릴레이로 수영을 해 28시간 만에 87.4㎞ 가량 떨어진 독도에 도착했는데 수심이 깊은 곳은 2㎞나 돼 그야 말로 목숨 건 종단이었다. 그때 (사)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길종성 이사장과 인연이 돼 지금까지 ‘독도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5년에도 33명의 여성들과 두 번째 종단에 성공했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로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들었다.

“5공화국 땐 ‘독도는 우리땅’ 노래가 금지된 적이 있다. 당시 정권 실세들이 알아서 한 과잉 충성경쟁의 결과물이었다. 방송에서 더 이상 내 노래를 들을 수 없었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일본 비자를 요청했을 때 거부당한 적도 있다.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비자 발급에 결격 사유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참다 못해 대사관으로 찾아가 욕이란 욕을 다 퍼부으며 비자 관련 서류를 돌려받아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 일본을 평생 방문하고 싶지 않고, 우리나라가 50년쯤 지배했으면 좋겠다.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웃음) 금강산을 방문한 적 있는데 북한 안내원이 먼저 알아보곤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가 아니냐’고 물었다. 독도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성소다.”

정광태는 ‘김치 주제가’의 인기에 힘입어 1986년 3월 삼양의 김치라면 CF를 촬영했다. 당시 배종옥 등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다. 

“난 그 때나 지금이나 촌스러운 것 같다”고 낮춰 말하지만 우리 민족의 응원단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치라면 씨엠송에 ‘김치라면 어떤 맛일까, 없으면 허전해요’라는 부분이 있는데 정광태 없는 독도, 왠지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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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광태는?

▲ 1955년 서울 출생. 본적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20 
▲ 서라벌고 졸업
▲ 명지대 무역학과 졸업
▲ KBS ‘젊음의 행진’ 데뷔
▲ 1983년 KBS 남자가수 신인상 수상(독도는 우리땅) 
▲ 1984년 독도 첫방문. KBS 가사대상 동상수상(도요새의 비밀)
▲ 2000년 독도수호대와 울릉도∼독도 뗏목탐사 
▲ 2004·2005년 울릉도∼독도 수영종단 
▲ 2007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이사(현 고문)
▲ 2010년 국제대학 연예매니지먼트과 초빙교수 
▲ 2011년 동해해양경찰서 홍보대사
▲ 2015년 현재 뮤직라이프엔터테인먼트 대표, 독도명예군수, (사)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명예회장 
▲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2005)
▲ 주요 히트곡 = 독도는 우리땅, 도요새의 비밀, 힘내라 힘, 김치 주제가, 화랑관창, 의병대장 곽재우, 계백장군, 광개토대왕 등 다수

/글=김민욱기자 kmw@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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